쉼터 이야기
어릴 적 보았던 풍경을 나이가 들어 다시 마주하게 되니, 문득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집집마다 아침저녁으로 굴뚝에 불을 때던 시절, 연기가 피어오르던 모습이 아직도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그 연기를 보고 있자니, 마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동네를 둘러보니 아흔이 넘은 어르신 댁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지금도 방에 불을 때며 사시는 어르신의 그 모습을 생각하니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 쉼터의 연기는 화목난로에서 올라오는 냄새다.
어제는 막둥이와 셋이서 쉼터에 들어왔다. 막둥이는 화목난로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들뜬 모습이었다. 아들이 불을 지펴본다며 하는데 쉽지 않은지 자꾸만 꺼졌다. 남편이 하나하나 알려주었지만 익숙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불을 지피는 과정을 많이 보아 와서 자연스레 손이 알고 순서대로 움직이지만, 막둥이는 순서를 전혀 몰라 헤매는 모습이 귀여웠다.
남편의 도움으로 불을 지폈고 금세 난로가 따뜻해지자 분위기가 포근하게 바뀌었다. 불은 우리에게 묘한 친화력을 선물해 주었고, 우리는 난로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편은 장작 패는 법도 알려주겠다며 막둥이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도끼질 한 번에 장작이 시원하게 쪼개지는 모습을 보며 막둥이는 신기해했다. 직접 해보겠다고 도끼를 들었지만 처음엔 쉽게 쪼개지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 반복하더니 금세 요령을 잡고 제법 능숙하게 장작을 쪼갰다.
26살 아들은 자연에서 사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새벽 네 시, 남편은 우리를 위해 불을 피웠다. 비닐하우스를 닫아놓은 채 불을 지피니 텐트 속까지 연기가 들어왔다. 막둥이는 자다 일어나
“아버지, 지금 화생방 하시는 건가요?” 하며 투덜거렸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 질식하겠어. 목이 매워.” 하고 소리쳤다. 남편은 서둘러 하우스 문을 열고 연기를 빼냈다. 따뜻하게 해 주려고 애쓴 건데 우리가 불평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밖은 아직 어둡고 차갑지만 새벽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아침 5시가 되어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가
‘세이노의 가르침’ 책을 읽고 독서 나눔을 했다. 세이 노 어르신의 찰진 욕과 꾸짖음 시원한 문장들을 보며 나 역시 반성할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경험해 본 자이기에 자영업이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떡볶이를 팔면서 인생을 배웁니다』를 함께 낭독하고 나누었다.
단순히 떡볶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추억을 담아 건넨다는 마음가짐이 인상 깊었다. 무슨 일을 하든 이런 마음으로 한다면 분명 좋은 길로 이어질 것 같다.
아침 루틴을 마치고 막둥이와 난로 옆에서 쉬고 있는데 광양에서 형님이 갑자기 들어오셨다. 시숙님 진료를 받으러 오신 길에 따라와 우리 쉼터에 들르신 것이었다. 마침 닭 두 마리를 사 온 덕분에 약재를 넣고 큰 솥에 삶아 점심을 맛있게 대접할 수 있었다. 형님 부부께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할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한 하루였다.
이번 주에도 쉼터에서 손님이 오셔서 쉬지 못하고 요리사를 하고 왔지만, 그래도 영원히 쉬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