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없는 수컷 원숭이'에 대한 변론
도시의 사냥꾼들이 느긋하게 쉬고 싶을 때는 여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남자 전용 '클럽'에 간다. 청소년들은 남자들끼리만 폭력단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약탈하는' 성격을 띤다. 학술협회와 사교 클럽, 친목회, 노동조합, 스포츠클럽, 프리메이슨 집회, 비밀 결사에서부터 10대 폭력단에 이르기까지, 남자만으로 이루어진 모든 조직에는 사나이의 '의리'라는 강력한 감정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집단에 대한 강한 충섬심이 수반된다. 그들은 배디를 달거나 제복을 입는 등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를 몸에 부착한다. 신입 회원은 반드시 입회식을 치른다. ... (중략) ... 여자들은 남편이 '남자 친구와 어울리 위해' 밖으로 나가면, 마치 그것이 가정에 대한 불성실함을 의미하는 것처럼 화를 내고 바가지를 긁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남자들이 밖에 나가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남자들끼리 떼를 지어 사냥하는 오랜 성향의 현대적 표현일 뿐이다. (데즈먼드 모리스, 털업는 원숭이 中)
우리는 이 말에서 어째서 현대의 남자들이 가정에서 배우자로부터 끊임없이 핍박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핵심적인 문제를 끌어올 수 있다. 한 남편의 일관된 어른스럽지 못함보다는 오랜기간 동안 진화를 통해 축적된 본능적 충동에 의한 작용이라는 그 발현상의 원시성, 성격과 그 행동의 원초성이 바로 인간 수컷 정신의 지주였던 까닭이라고, 모리스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이라는 털 없는 원숭이의 육식동물화와 그에 따른 지식의 후세대로의 전파, 유태보존으로 인한 모성의 양육전담이라는 현상이 바로 인간 수컷들이 초원 위의 육식동물들과 경쟁함에 있어 사냥집단이라는 끈끈한 유대를 형성케 한 것이라고 모리스는 말하고 있다. 육아를 전담하는 또는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현대의 여성들은 이러한 인간 수컷들의 유대를 단지 육아나 가사에서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수컷들의 행동은 모두 오랜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 온 말하자면 먼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본능에 바탕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본능이라는 말을 원초성라고 옮겨보면 그 뜻이 더욱 명확할 것이다.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사고와 생활양식을 합리적으로 고려할 때, 원초성이라는 것을 쉽사리 떠올리기는 어렵다. 현대인들은 그 본능적 기제와는 별개로, 또한 억압을 받고 있다는 수동적인 면에서는 적어도 굉장히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며 현대적이다. 어째서 인간 수컷들이 가정 밖으로 나가는지, 자신들만의 집단을 형성하는지, 그 집단에서는 여성이 배제되는지, 그러한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를 썼다. 마치 어둠에 묻혀 있던 자연의 법칙에 뉴턴의 이성이 닿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광선을 드러내듯, 뿌였고 어렴풋한 인간 수컷의 성격과 심리와 행동이 모리스의 저작 속에서 모두가 하나의 빛으로 변해버린다.
※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의 오솔길' 중 일부를 습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