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픈 아이의 부모
요즘도 나는 가끔 숨죽여 웁니다
"뇌전증이라는걸 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 알겠지?"
병원에 가 진단을 받은 뒤 엄마가 내게 가장 먼저 건낸 말이다.
13살의 나는 내가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잘 몰랐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발작을 동반한다는 점만 어렴풋이 인지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내 병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된다.'라는 말을 자주했는데 서른 남짓이 된 지금은 그 마음을 얼추 알 것 같기도하다. 뇌전증 환자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박하지만 예전에는 더 심했다고 한다. 옛날 사람인 엄마는 이런 현실을 알고 세상의 편견과 홀대로부터 나를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유일하게 서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 병에 대해 무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아주 졸리거나 컨디션이 나쁠때에만 엄마에게 '엄마, 나 오늘 컨디션이 좀 별로야'라고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왜'라고 답했었다. 그 '왜'에는 오직 걱정과 염려만이 담겨있었지만 감정을 고스란히 다 드러내는 엄마의 안면근육은 날 주눅들게 만들었다. 쓰러지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엄마는 늘 찌푸리거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표정을 떠올리다보면 '컨디션이 별로야', '몸이 좀 이상해'와 같은 말은 목구멍 저 너머로 삼켜졌다.
나는 엄마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잠시 의식을 잃었다 되찾았을 때 '어머 일어났네! 잠은 좀 푹 잤어?'와 같은 일상적인 말을 던지는 엄마를 바랬다. 몸이 안좋다고 말했을 때 '그래? 좀 쉬어'라고 따숩게 말하는 엄마를 원했다. 집안일 하랴, 일도 하랴, 아픈 자식 뒷바라지 하랴, 엄마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을텐데 그 와중에도 난 무적의 평정심까지 겸비한 엄마를 꿈꾸었다. 정말이지 난 욕심쟁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난 누군가의 엄마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꽤 많은 '아픈' 아이들을 만났고 만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장애를 지닌 학생들도 있고, 뇌전증과 같이 티가 안나는 병을 지닌 친구도 있다. 하루라도 더 일찍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부모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바로 방어기제가 강하다는 점이다. 아픈 아이들의 부모들은 날이 서있다. 아마 세상의 편견이나 홀대로부터 자기 자식을 지키고 싶다는 강한 보호 본능과 타인에 대한 날선 경계심, 내 마음같지 않은 아이를 길러내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의사가 아닌 나는 이런 아이들과 부모들을 치유하는 법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대하는 법은 안다. 바로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바랬던 태도이다.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특유하다고 여길 이 사람들을 아무 편견 없이 보통의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 이것이 내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통해 터득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