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게 맞는 약을 찾아서
요즘도 나는 가끔 숨죽여 웁니다
확실하게 쓰러진 뒤 나는 첫 진료를 받으러 갔다. 소아청소년과였는데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 벽에 붙여진 스티커가 귀여워도, 간호사님들의 목소리가 친절해도, 대형병원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약을 처방받았다. 365일 매일 먹어야하는 약은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다. 캡슐약이었는데 아침에 3알, 저녁에 4알을 먹으면 되었다. 하늘색이 섞인 약이었는데 생김새가 퍽 귀여웠다.
뇌전증약의 원리는 그것이 '항경련제'라는 것이다. 즉, 경련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의 뇌를 잠시 눌러놓는 것이지 경련을 없애주진 않는다. 그래서 복용한다해서 증상이 없어지는게 보장되지는 않는다. 항경련제와의 만남은 불확실성에의 베팅이다.
나의 첫 베팅은 안타깝게도 실패였다. 학교에서 두 번이나 쓰러졌다. 그것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눈을 뜨니 양호실이었고 엄마는 내 손을 잡은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든 엄마의 눈은 비내린 뒤 낙엽처럼 촉촉히 젖어있었다.
결국 난 약을 바꿨다. 두 번째로 바꾼 약은 생김새도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그럴법도 한게 먹은 뒤 얼마안되어 두드러기가 났기 때문이다. 작은 좁살같은게 종아리에 도톨도톨 올라왔다. 그래서 한 번 더 약을 바꿨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 약은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다.
나는 14살때 만난 약과 15년을 함께 하고 있다. 가끔은 약이 날 위해 존재하는건지, 내가 약을 위해 존재하는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작은 알약 몇 개가 나를 유지시켜준다는 안도감은 동시에 이거 없이는 내가 홀로 설 수 없다는 불안감을 준다. 관성처럼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다보면 어느날은 아침에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럴땐 할당량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할당량을 넘어버렸다는 불안감에 일상에 집중하지 못한다.
스물 중반즘이었나. 내가 약에 종속되어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거 없인 내가 불확실하다는 불안감. 불확실성이 당연지사인 인생사에 나는 늘 확실함과 안전함을 갈구하는 버릇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