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완치 개념이 없다. 뇌전증은 조절하는 병이다. 그래서 장기간 증상이 없으면 단계적으로 약의 복용량을 줄이거나 복용을 중단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감사하게도 3번째로 시도한 약에 정착한 후 큰 이변이 없었다. 고교 시절 부분발작이 와 약을 줄일 순 없었지만 내 일상은 무난했다. 이 정도면 나도 내가 뇌전증 환자라는 것을 잊고 살 정도였다.
지옥같았던 고3이 끝나고 나는 교대에 입학했다. 한 명의 담임교사가 전과목을 지도하는 초등교육의 특성 상 교대에는 다른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강의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실과의 재봉틀 수업이다. 원래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썩 내키는 강의는 아니었으나 어찌됐건 강의고 과제이니 해야했다. 재봉틀은 생전 처음 만져보는거라 궁금하기도 했다.
첫째, 바늘 아래 천을 넣는다. 둘째, 패달을 밟는다. 셋째, 바늘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천에 실이 박힌다.
재봉틀은 이 세 가지 단계로 운용된다. 문제는 3단계였다. 천을 돌려가며 박음질을 하려는데 손이 떨렸다. 13살에 처음 경험한 그 떨림이었다. 옛날 필름카메라를 써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찰칵' 소리가 날 때까지 약 1초의 빈 시간이 있다. 손이 떨릴 때 내 뇌는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처럼 공(空)하다.
무서웠다. 무엇이 무서웠냐면 같이 팀플하는 조원이 눈치를 챌까봐 무서웠다. 내가 꽁꽁 숨겨왔던, 힘에 겨워 목끝까지 차올라도 꾹 눌렀던 비밀이 들통날까 겁이났다. 그래서 결국 난 한 학기 내내 타고나기를 손재주가 없고, 재봉틀을 혐오하는 컨셉을 유지했다. 다행히 팀플원은 봉재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야말로 업혀갈 수 있었다.
병원 정기 검진 때 의사선생님께 일련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뇌전증 환자 중 일부는 반복적으로 깜빡이는 빛이나 현상을 보면 발작을 경험한다고 한다. 달리는 지하철의 차창을 보고 경련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봉틀을 만지자마자 13살 그 순간으로 돌아간듯한 그 기분을 느꼈다. 그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기분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그 기분은 슬픔이나 비통도 아닌 절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