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구에서 파노라마를 본 적이 있나요?

왕이메오름

by 민작가


제주 입도하고 초창기에 오름들을 막 찾고 있을 때였다. 애월에서 제법 가까운 안덕면에도 오름이 꽤 많은 편인데 찾던 중 왕이메오름을 알게 되었다. 분화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오름이며 그 전망이 독특하다는 리뷰를 접하고 회원들과 이 곳에 도전하기로 했다.



왕이메오름은 안덕면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다. 다만 주차장이 따로 없어서 길가에 세워야하는 아주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수도권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갓길주차가 제주에서는 흔하다. 관광지를 벗어난 제주는 시골답게 주차에도 관대하다. 한 번은 국회의원 선거날이었다. 리사무소에서 투표를 한다하여 아이들과 간다고 하니 육지에 있는 신랑은 주차걱정부터한다. 수도권의 좁은 주차장을 끼고 있는 주민센터들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을게다. 리사무소 풍경을 보고 있는 나는 절로 푸핫 웃음이 나왔다. 리사무소 자체는 주차장이 넓지 않으며 사람들이 애써 주차구역에 차를 대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주차장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사무소 앞 도로가에 차들이 즐비했다. 이런 주차인심이 참 좋다. 제주도도 시내는 서울 저리가라할 정도로 주차난이 심각하다. 자리를 찾느라 몇 바퀴 도는 건 예사이다. 반면에 시골은 가게 앞 도로가도 20분이나 주차가 가능하고 넓고 한적한 무료주차장도 곳곳에 있으며 한적한 길가에 세워도 허용되는 분위기이다. 주차만 보아도 시골살이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적은 지 실감할 수 있다. 왕이메오름 주차도 시골주차처럼 갓길에 대고 너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차를 등지고 갔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딱지 없이 온전히 있으리라는 것을.


눈에 잘 띄지 않는 허름한 오름 간판과 입구를 잘 찾아 들어가면 키가 큰 웅장한 나무들이 반겨준다. 흙은 붏은 화상송이들로 덮여 있고 언덕을 향해 걸어올라가면 사거리를 맞딱드린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고 방황을 하게 되는데 왕이메는 비교적 길이 쉬운 편이다. 직진하면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 오른쪽은 둘레길이기에 어느 방향으로 가든 원점으로 회구하게 된다. 둘레길은 삼나무가 쭉쭉 뻗어있는 숲길로 사시사철 피톤치드 뿜뿜 맡으며 걸을 수 있어 좋다. 완전 능선은 아니라서 약간의 오르내리막도 있어 걷기 지루하지 않다.



왕이메의 하이라이트는 분화구이다. 분화구로 내려가면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고개를 들면 푸른 숲으로 된 성 안에 들어온 것처럼 오름 벽으로 둘러쌓인 스카이뷰를 마주한다. 분화구에 들어갈 수 있는 오름은 많지만 이런 파노라마뷰를 가진 오름은 왕이메뿐일 것이다. 이 광활한 뷰를 마주하면 나는 커다란 오름에 폭 안겨 하늘을 바라보는 작은 인간일 뿐임을 깨닫는다. 날씨 좋은 날에는 들판에 앉아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상상을 잠시 해 본다.


이 분화구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봄철 제주에는 고사리따기가 한창이다. 목장이고 오름이고 너도나도 맛있는 고사리를 따고자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이는 분들도 많다. 그 때 쯤이면 어디가야 고사리가 많냐가 항상 입방아에 오른다. 왕이메오름도 그 중 한 곳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가 고사리철이어서 그 때도 여자 두 분이 고사리를 열심히 따고 계셨다. 두 분이 각자 일에 집중하시고 멀리 떨어져있어 처음에는 일행인 줄 몰랐다. 알고보니 자매라며 출구를 잃은 우리가 길을 물으니 알려주셨다. 그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다음 해에 다시 갔을 때는 우리도 고사리를 따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는 그 분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영양분이 많아서일까 엄청 실하고 긴 고사리들이 즐비한 고사리 스팟 중 하나다. 준비를 별로 못 해간 탓에 그 날은 얼마 따지 못하고 나가자는 다른 회원들 등살에 발걸음을 떼야 했다. 다음에 또 고사리철에 방문하거든 풀장착을 하고 들어가리라 다짐하며 아쉬움을 안고 나왔다.


아름다운 숲길과 병풍처럼 하늘을 둘러싸는 분화구, 고사리 스팟 등 재미있는 점들을 간직한 왕이메오름. 서쪽에서 짧은 시간내에 둘러볼 곳이 필요하다면 왕이메를 방문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