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억새 둘레길_송악산>
제주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오름 송악산. 올레 10코스에도 포함되어 있는 송악산 둘레길은 관광명소 중의 하나다.
처음 송악산 둘레길을 갔던 때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2월 중 어느 날이었다. 바람 싸다귀를 심하게 맞은 거 외엔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오름 회원 중 한 분이 억새 필 무렵 송악산을 가자고 제안하여 올레길을 걸을 겸 가게 되었다. 사실 제주도 가을은 어디를 걸어도 좋은 걷기 러버들에게 최상의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와 맑고 청정한 하늘, 바람이 거의 없거나 산들바람이 부는 정도로 온도, 습도, 공기청정도, 풍량 모든 것이 완벽한 계절이다. 딱 그런 날 송악산을 다시 간 것이다.
이런 날씨에 관광지인 송악산 주차장에 들어서니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북쇄통을 이뤘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싶었는데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이고 나도 관광객의 일부인양 연신 탄성을 외쳤다. 왜 억새를 보러 이 곳에 와야 하는지, 이제는 말이 필요없이 억새하면 송악산이 떠오를 정도다. 송악산을 뒤덮은 억새가 산들바람에 파도를 타고 그 옆에는 짙은 푸른 바다가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바다와 억새가 이렇게 조화를 이룰 수 있구나. 햇볕까지 내리 쬐니 바다에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보석들이 바다의 출렁임에 끊임없이 일렁인다. 그런 둘레길이 30여분동안 이어지니 장관이 따로 없다.
날이 맑아 가시거리가 좋으니 저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까지도 맨 눈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 위치만으로도 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송악산에서 바라보면 가파도가 엄청 가까워 수영해서 갈 수 있을 만한 거리로 보인다. 전쟁이 발발해 제주에서도 피난을 가야한다면 수영해서 가파도를 가겠다는 친구도 있고, 수영하면 얼마나 걸릴까 가늠해 보는 친구도 있다. 어쨌든 항상 입방아에 오르는 송악산과 가파도 거리. 누군가는 시도해 봤을 법하지만 우리에게는 가십거리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송악산 둘레길은 송악산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후반부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절경이 나온다. 송악산의 절벽을 따라 만이 형성되어 있는데 지질층이 형성된 절벽, 영롱한 쪽빛 바다, 화산재로 만들어진 검은모래해변, 절벽 위의 짙푸른 소나무 등이 액자 속 그림처럼 머리 속에 각인된다. 나는 유독 자연적으로 형성된 만의 곡선을 사랑한다. 왜 화가들이 여성의 곡선을 그리도 그려댔는 지 알 것도 같다. 직선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기 쉬운 반면 곡선은 자연의 힘이 아니면 만들기 어렵다. 대부분의 자연물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나뭇잎, 잔디나 억새의 휘어짐, 해변, 심지어 울퉁불퉁한 돌 조차도 직선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곡선을 동경하고 열망하는 게 아닐까. 때문에 이렇게 완벽한 곡선을 그리는 송악산 해안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 해안을 지나면 얼마 안 가 송악산 주차장으로 귀환한다. 이 코스만으로는 우리 운동량은 채울 수 없어 사계해안까지 걸었다. 송악산에서 사계해안까지는 걸어서 30분 내외면 된다. 사계해안은 해변보다 바닷가 절벽이 유명하다. 화산이 분출할 때 흘러내린 용암이 바다와 만나 굳은 그 흔적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 바위 생김새들만 봐도 제주도가 화산섬이구나를 일깨워준다. 아이들도 가면 바위 중간중간 있는 구멍을 아지트라며 들어가 노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숨바꼭질하기에도 제격인 장소다. 송악산에서 사계해안까지 가는 길에도 비슷한 바위들이 있는데 유적이 발굴된 건지 출입금지와 보호조치를 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송악산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면 사계해안까지 걷는 코스도 추천한다.
다른 계절에도 송악산은 걷기 좋은 길이라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는 최고의 억새길로 저장이 되어 있다. 억새가 피면 꼭 가보라.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