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마다 헤매니 돌아버려

노꼬메둘레길

by 민작가


제주 오름에는 대개 오름 정상으로 가는 길만 있지 않다. 오름 외곽을 빙 둘러 올라가는 둘레길이 있다. 제주 서쪽에는 노꼬메둘레길이 가장 큰 둘레길이다. 신선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큰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그리고 궷물오름, 이 3개의 오름을 끼고 주변을 걷는 둘레길이다. 오름 회원이 억새길을 보여주겠다며 우리 모임에 이 둘레길을 처음 소개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때는 그 분이 안내해주어 뒤만 보고 따라가니 길을 눈여겨 봐 두지 않았었다. 아름다운 억새길만 감상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그 뒤로 노꼬메가 집에서 10여분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봄여름가을겨울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 노꼬메둘레길이 되었다. 알고보니 도민들이 가장 많이 걷는 코스 중의 하나가 이 둘레길이다. 봄에는 새싹의 싱그러움, 여름에는 보라빛의 수국길, 가을에도 짙은 초록의 숲길, 겨울에는 억새길 사시사철 가도 좋은 숲길이다. 굳이 관광객들로 붐비는 사려니나 비자림까지 갈 필요가 없어서 좋다. 그런데 이렇게 다 좋은 둘레길의 단점은 아는 사람만 편히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안내역할의 리본이 잘 달려있지 않고 안내판도 별로 없다. 그런 와중에 삼거리, 사거리도 종종나오고 갑자기 길이 없어지기도 하고 트렉터가 지나가는 길도 나오고 지도가 없으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가늠이 안 잡힐 때도 있다. 대여섯번 갔는데 최근 한 번 빼고는 항상 헤맸던 코스이다. 좋기도 하지만 갈 때마다 헤매서 돌아버리는 숲이다.



한 번은 신입회원을 데리고 셋이서만 간 적이 있었다. 그 날 뭐에 씌였는지 심각하게 헤맸었다. 사거리에서 우리가 왔던 길이 어딘지 몰라 4개의 갈림길을 일일이 다 걸어가 보았다. 한참을 걷다가 아니다 싶어 돌아오고 또 다른 길로 갔는데 아닌거 같아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출구를 찾아냈다. 이렇게 헤맬 때마다 내가 신이 되어 혹은 드론이 되어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오름이나 숲에서 헤맬 때에는 그렇게 싱그럽던 나무숲들이 갑갑하고 얄밉다. 다 밀어버리고 민둥산 위에 있으면 속 편하겠다싶다. 그 지옥의 사거리때문에 1시간 넘게 소비하고 그 둘레길을 4시간이나 걸려 빠져나왔다. 신입회원에게 미안하고 민망하고, 더 이상 우리 모임에 나오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여태 잘 버티고 있다.




이렇게 헤매는 일이 잦으니 리본을 만들어 달자고 2년째 말로만 외치는 중이다. 막상 달자니 우리가 간 길이 제대로 된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도 들고 리본의 책임감을 지기 싫어서일까. 그냥 리본일 뿐이지만 산 속에서 헤맬 때 리본의 힘은 대단하다. 길을 못 찾아 식은땀을 뻘뻘 흘릴 때에는 구세주나 다름없기 때문에 리본은 결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고작 리본이지만 그걸 달 때에는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리본의 힘을 빌리지 못하더라도 다행인 건 노꼬메둘레길이 인적이 드문 곳은 아니라 간혹 마주치는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고자하는 방향이나 위치를 정확히 알고 물어야 한다. 족은노꼬메주차장, 큰노꼬메주차장, 궷물오름주차장 방향이 다 제각각인데다가 도로처럼 계획한 길이 아니다보니 답하시는 분들도 어려울 때가 있다. 설명을 들어도 어떤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 건지 헷갈려 또 다시 미궁에 빠지기도 한다.


유일한 노꼬메둘레길 지도




한 번은 고사리철이라 어딜가나 고사리따는 분들을 종종 마주쳤는데 우리는 족은노꼬메주차장을 찾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헤매던 그 곳이 어디였는지 모르겠다. 아저씨 두분은 주차장까지 너무 멀다고 한 시간 걸릴거라고 하시고 또 만난 한 젊은 여자분은 바리메오름을 통해 이리로 왔다고 했다. 정말 ‘hell’이었다. 또 다른 오름까지 얽혀있단 말인가. 골반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을 아는가? 이미 내 한계를 넘어서 걷기도 힘든데 길까지 못 찾으면 어깨에 곰 한마리가 더 얹혀져 발길이 천근만근이 된다. 그런 몸과 마음으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가물가물하다.


하다하다 못 찾을 때는 길을 만들어서 간 적도 있다. 지도어플을 보니 11시 방향으로 가면 노꼬메주차장이 나오는데 길이 없었다. 온통 수풀로 뒤덮여 있는 땅이었다. 하는 수없이 수풀을 밟아가며 길을 만들어 겨우 빠져나왔다. 하필 그 때 한 분이 반바지를 입고 와서 고생 좀 했더랬다. 둘레길이라고 산책을 생각하고 그리 입고 왔다가 완전히 낭패를 본 날이다. 이래서 날이 덥더라도 오름, 숲은 항상 긴팔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 어떤 상황을 마주할 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 뱀도 자주 만나고 옷이나 살갗이 뜯기기도 하고 뼈만 남은 노루 사체도 맞딱드리고 말들이 죽어 쓰러져 길을 막는 난감한 상황에도 처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제주 한달살이를 할 때만해도 일년 뒤에 내가 제주살이를 할 줄은, 그 일년 뒤에 제주에 정착할 줄은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아닐까 싶다. 그래서 숲에 들어설 때마다 좋기도 하지만 긴장도 절로 들어선다.


생각해보니 갈 때마다 헤매고 고생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많이 찾은 길이 노꼬메둘레길이다. 그만큼 좋은 점이 더 많아서이지 않을까. 제주 서쪽의 걷기 좋은 숲길을 찾는다면 단연코 노꼬메둘레길을 추천하겠지만 단, 주의 사항 ‘헤매기 쉬움‘을 꼭 명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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