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은 이런 기분일까?

노꼬메오름

by 민작가


노꼬메오름은 제주에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옆집 아저씨한테 귀동냥으로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오름 중에 이 오름을 가장 좋아하시며 혼자서도 라면을 짊어지고 자주 오른다고 하셨다. 그 말에 이끌려 나도 조사를 좀 했는데, 다른 오름들처럼 정상까지 20분 이내정도 걸리는 낮은 오름이 아니었다. 편도 1시간정도 생각하고 올라야하며 오르기 쉽지 않다는 글들을 많이 접하고 나서는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올라갈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신랑이 육지에서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낮은 오름 조차도 오르기 전부터 둘째 센이 제동을 거니 쉽지 않다. 항상 먹을 걸 넉넉히 챙기고 오름에 올라가서 먹자고 달래야 그나마 불평불만을 덜 들으며 걸을 수 있다. 한번은 우도에서 우도봉을 올랐는데, 사실 오름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오르막길 수준이었다. 등대까지만 오르막이고 그 뒤로는 내리막인 아주 수월한 ‘길’이었다. 거기에 올라간다고 하니 쎈이 나를 붙들고 “언제 끝나? 엄마가 가자고 했으니 엄마가 알 거 아니야!”라며 쏘아붙였다. 그 기분을 아는가? 화가 저 아래 심전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뜨겁게 올라오는 기분을. 그런 일을 몇 번 겪고나면 말을 꺼내기 전부터 힘이 빠지고 머리가 띵하다. 내가 찾은 해결책은 신랑에게 그녀를 토스하는 것이다. 그나마 부드러운 신랑이 나보다 훨씬 그녀를 잘 보필하고 이해하니 대개 우리는 둘씩 갈라진다. 성격이 급한 나와 첫째 썬이 선발팀, 느림의 미학 신랑과 쎈이 후발팀으로 자연스레 나뉘어 걷게 된다. 그렇기에 노꼬메오름에 가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도 간식도 아닌 신랑이다.


2월 말즈음, 썬이 너무 사랑하는 컵라면 2개와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 생수3병, 약간의 스낵을 배낭에 넣고 네 식구가 노꼬메로 향했다. 노꼬메오름은 큰노꼬메와 족은노꼬메가 있는데 보통 노꼬메라하면 큰노꼬메를 일컫는다. 2월이었으나 날씨는 완연한 봄날처럼 따뜻했다. 그래서였을까 주차장에서부터 노꼬메오름을 향해 걸어가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정을 함께하는 분들이 많은 걸 인지한 후로 어깨 긴장이 좀 풀렸다. 힘든 오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 혼자 긴장하고 라면보다 더 큰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떨림 반 설렘 반으로 노꼬메 숲으로 들어섰다. 탐방로는 야자매트로 잘 깔려있다. 키가 큰 나무의 행렬이 이어지고 숲을 지나니 무덤이 우리를 반겨준다. 제주도는 여기저기 무덤이 참 많다. 오름 탐방로에서도 무덤을 많이 만난다. 그런 무덤은 대개 주변에 돌담이 둘러싸여 있고 근처에 고사리들이 자란다. 예전에는 무덤을 보면 귀신이 떠오르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는데 숲 속에 있는 제주 무덤들은 왠지 자연스러워 보인다. 노꼬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년 내내 방문객이 끊이지 않으니 외롭지 않겠다. 시끄러워서 좋은 걸까 싫은 걸까 문득 사후 세계가 궁금해진다. 생각을 뒤로하고 무덤을 지나치면 더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돌계단의 향연이 이어진다. 중간에 쉼터가 있어서 잠시 쉬어 간다. 헉헉대는 나를 보며 신랑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즐거운걸까? 늘 그랬던 것 같다. 운동할 때 나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좋아한다. 그 생각도 잠시 힘듦에 머리 속이 하얘진다.

오래 쉬면 늘어져서 안 된다. 훌훌 털고 다시 계단을 올라간다. 이미 아이들은 먼저 치고 나갔다. 남들은 내가 체력이 좋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내가 항상 골찌다. 심지어 그 느림보 투덜이 쎈조차도 내가 답답했나보다. 어느새 아이들은 뒷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에잇, 자존심이 상하지만 몸뚱아리가 무거워 속도를 낼 수가 없어 다시 자괴감에 빠진다. 해결책은 다이어트라는 도돌이표에 다다른다. 참 희한하다. 여자들은 평생 ‘다이어트’라는 말을 안고 사는 것 같다. 200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싸이월드를 기억하는가? 얼마전에 정지해 놨던 싸이월드를 다시 사진까지 복원한다고 해서 어플을 설치해서 열어보았다. 미니홈피 대문을 보고 정말 놀랐다. 당시 20대였는데도 ‘살을 빼자!’라고 씌여 있었다. 2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다이어트라는 삶의 굴레에 갇혀 있다. 그래도 요새는 방향을 조금 틀어서 ‘건강하자!’가 신조이다. 이제 외모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40분 가까이 걸었나보다. 막판 꼴딱고개에서는 신랑이 내 뒤에서 엉덩이를 받치고 밀고하면서 올라왔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니 오르막이 끝나고 평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살면서 보기 힘든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백록담을 뒷배경으로 한라산이 중산간 치마자락을 좌르륵 펼쳐 보인다. 윗세오름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목도리처럼 병풍바위를 두르고 있다. 겨울 옷을 벗고 봄을 맞이하려는 나무숲들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 탁 트인 그 풍경은 언제 보아도 탄성을 자아낸다.

노꼬메는 올라오기까지 힘에 겹지만 일단 올라오면 그 보상을 확실하게 한다. 정상부가 능선이라서 남방부터 북방까지 산책로처럼 걸을 수 있다. 정상부에 가면 전망대가 있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또 다른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서쪽 비양도부터 동쪽 김녕 풍차까지 볼 수 있으며 가시거리가 좋은 날에는 먼바다 북쪽에는 추자도도 보인다. 또한 뒤를 돌면 청명한 날에는 산방산과 서귀포 바다까지도 볼 수 있다. 제주도의 거의 270도 가량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셈이다. 신선이라면 이런 곳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겠구나싶다. 앉아서 바다를 내려다 보며 먹는 컵라면 맛은 말로 어찌 표현이 가능하겠나. 따뜻하고 MSG가 듬뿍 우러난 우리의 라면 냄새에 주위 분들이 수근수근 동요한다. 아이러니한건 나는 그 분의 싱그러운 오이향에 매료되어 다음에 올라올 때는 오이를 꼭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명화같은 풍광을 멍하니 한참 바라보다가 하산했다. 하산할 때는 미끄러지지않게 주의해야 한다. 주변에 밧줄이나 나무 등 잡을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잡고 내려간다. 그 뒤로도 오름올래 회원들과 여러번 더 노꼬메오름에 올라갔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흰바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허무하게 내려간 적도 있었고, 미세먼지인지 안기앤지 뿌연 하늘 때문에 가시거리가 좋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이왕이면 바람이 조금 불더라도 안개나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은 날 올라가는 걸 추천한다. 이왕이면 열심히 올라갔는데 신선놀음 보상까지 받아야 좋지 않겠는가? 노꼬메오름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찾는 오름인지 이제는 백분 공감한다. 신선놀음하러 또 한번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