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귀중한거야

새별오름

by 민작가

서쪽 오름의 대명사 새별오름. 이효리덕에 더 유명해졌다는 새별오름은 평화로를 타고 오고 갈 때 자주 접하게 된다. 다른 오름들과 다르게 민둥산이라 눈에 더 잘 띄고 알아보기도 쉽다. 보통의 산처럼 삼각형 모양의 새별오름 정상에는 항상 사람들이 조그만 점의 형태로 촘촘히 서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먹이달라고 우는 제비집의 제비들같이 귀엽다.


새별오름을 사람들이 많이 찾을 만한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접근성이 좋다. 여타 오름들은 가는 길이 험하다. 깊은 숲 속에 위치하거나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헤집고 가야 주차장에 도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에 비해 새별오름은 왕복 4차선 도로변에 위치해 접근하기가 쉽다. 또한 주차장이 어마무시하게 넓다. 한라산 주차장보다 넓고 웬만한 행사 차량도 다 품을 정도이다. 제주는 아무래도 수도권에 비해 주차에 대한 부담이 덜한 편이지만 보통 관광지가 아닌 오름 주차장은 그리 넓지 않다. 반면에 새별오름은 주차장이 오름 너비만큼 넓어서 주차걱정은 1도 없다. 언제든 평화로를 달리다가 새별이가 보고 싶다면 핸들을 살짝 꺾어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두번째 이유는 행사가 많다는 점이다.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가 들불축제이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새별오름 전체에 들불을 놓아 태우는 큰 행사를 연다. 작년에 그 불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서 사전관람 신청을 했는데, 마침 그 시기에 강원도와 경북지역에서 산불이 오랫동안 진화가 되지 않고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제주관광청에서 산불 진화를 기원하고 산불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배려하여 올해 들불축제를 취소했다. 너무 아쉬웠지만 좋은 취지에서 취소한거라 다음해를 기약하기로 했다. 대신에 묘목나눠주기 행사가 있어 황칠나무, 산수유, 목련나무 3그루를 새별오름에서 받아왔다. 불놓기 대신 나무심기는 정말 훌륭한 생각인 것 같다. 비록 3월에 우리 마당에 심은 세 그루 중 두 그루는 1년을 채 못 넘겼지만 말이다. 새별오름에서 열린 또 다른 행사는 힐링레저박람회였다. 박람회 행사를 몇 주에 걸쳐 여러 차례 열었는데 가장 화려했던 것은 폐막식이었다. 래퍼 넉살이 문을 열고 감성파 가수, 댄서그룹 프라우드먼, 밴드, 맘마미아 대표 3인의 뮤지컬 갈라쇼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수들이 새별오름 앞에 설치한 무대 위에서 공연하였다. 오름에 레이저로 글씨나 그림 등을 표현하는데 조명과 레이저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니 눈물이 날만큼 낭만적인 공연이었다. 이것은 새별오름이 아니면 불가능한 연출이다 싶었다.


제주도가 새별오름을 이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오름에 메세지 남기기이다. 재작년 코로나 팬데믹시기에는 오름 등판에 “COVID OUT”이라고 글씨를 새겨 놨었는데 작년에는 “무사안녕일상회복기원”이라고 메세지를 바꿔 남겨 놓았다. 차를 타고 새별오름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끼리 논쟁을 했다. 저건 글씨를 새긴 것일까, 글자형태로 무엇을 얹어 놓은 것일까? 답을 모른채 여름이 지나버렸다. 올 겨울에는 또 어떤 메세지를 남길지 문득 궁금해진다.


넷째, 새별오름하면 떠오르는게 억새, 억새하면 새별오름이 떠오를 정도로 둘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가을바람이 살랑일 때 핑크빛 억새가 새별오름을 뒤덮는다. 핑크색으로 태어나 흰색으로 옷을 바꿔입는 억새는 가을 겨울의 제주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서쪽에서는 억새 명소로 새별오름을 많이 찾는다. 오름을 오르는 길에 파란 하늘 밑에 억새가 춤추는 광경을 보면 연신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름 뒤 편에 둘레길에 있는 억새밭에서는 사진 촬영 버튼을 안 누를 수가 없다.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찍어주겠다고 그 억새길에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민망했지만 억새 바람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마지막으로 일몰이다. 제주 서쪽에 살 때는 일몰을 보러 여기저기 나만의 명소를 찾아 다녔다. 바다 일몰도 매력이 있지만 오름에서 보는 일몰 또한 장관이다. 볼 일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일몰시간이 가까워지면 때때로 새별오름에 들르기도 한다. 기어갈 정도로 가파르지만 10분정도면 정상에 올라 멀리 비양도, 금오름, 한라산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한참 나만의 감상 시간을 가지고서 주위를 둘러보면 DSLR이나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올라와 일몰을 기다리는 분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구름이 많은 여름에는 예쁜 일몰을 보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정상에 선 이들은 다같은 마음으로 한 방향을 바라본다. 노루들이 해질녘 모두 앉아 해가 저무는 모습을 경건하게 바라보듯이 우리도 해가 진 뒤에 찾아올 컴컴한 어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과학 시간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배웠더라도 실제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 그 사실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다. 내 눈에는 붉은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점점 사라지고 마는데 붙잡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40년 넘게 살아도 어둠에는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몰을 좋아하나보다. 오늘 하루를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낮과 밤의 경계인 태양이 없는 붉은 하늘, 그 시간을 즐기나보다.

그 사실을 아는가? 일몰을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태양이 사라진다. 어느 날 일몰을 동영상으로 찍다가 깨우친 그 사실을 썬한테 말했더니 돌아온 답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있다. “엄마 몰랐어? 그래서 노을은 귀중한 거야.”

지금 제주도 평화로를 달리고 있다면 새별이에 올라 매일의 귀중함을 느껴보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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