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의 사랑을 굳건히

원물오름

by 민작가


제주에 머물고 있으니 친정부모님과 시댁어른들께서 여행삼아 제주를 번갈아 방문하신다. 양가어르신들의 체력이나 컨디션때문에 보통 오름이나 올레길은 여행 일정에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는 유일하게 친정어머니만 몇 년전에 오름을 한 번 올랐었는데 그 경험이 참 좋았다고 하신다. 입도한 해 10월 친정부모님과 동생이 제주도에 여행을 왔을 때 오름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다. 서귀포 안덕면에 숙소를 잡았던 터라 근방 낮은 오름을 검색하여 고른 것이 원물오름이었다.


원물오름은 높이가 98m 밖에 되지 않으며 안덕충혼묘지의 너른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샘물 앞에 원물오름 안내판이 있는데, 거기에 씌여 있는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조선시대 공무원들을 위한 ‘원’이라는 숙식장소가 근방에 있었다. 그 원이 지명에 연결되어 이 곳 샘을 ‘원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안내판 앞에서 몇 분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 해 봄에 척추수술을 하신 친정아버지께서는 주차장에서 기다릴테니 우리끼리만 다녀오라고 버티셨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친정아버지까지 모시고 갈 계획은 아니었으나 막상 오름 앞에 서니 욕심이 발동했다. 높이도 높지 않았고, 며칠 지켜보니 아버지 체력으로 이깟 오름쯤은 무리없어 보였다. 게다가 언제 또 우리 식구가 다 같이 오름을 오르겠는가? 제주에서 머물면서 생긴 모토가 있다. <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 > 가족 모두가 합심하여 아버지를 설득해서 영광의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과 다르게 첫 관문부터 쉽지는 않았다. 말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문 입구에 철조망까지 쳐져 있어서 허리숙여 헤치고 들어가야한다. 길도 매트가 깔려 있지 않고, 가운데가 깊이 파여있는 데다가 큼직한 돌덩어리들이 산재해 있어 걷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친정아버지께서 가도 되는 길이 맞냐며 재차 확인하시니 웃음이 났다. 이런 오름을 다니면 의례 한두번씩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받고는 한다.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오름은 길이 그만큼 잘 닦여 있지 않고 가도 되는게 맞나하는 의문이 한 번씩 들기 마련이다. 서너번 이런 길을 다녀보면 비포장도로가 어색하지 않고 잡초가 무성하면 살며시 헤치며 실낱같은 인적이라도 찾아 나아갈 수 있다.


원물오름은 차량이 꽤 많은 길목에 위치해 있지만 그에 비해 인적이 드문 것 같다. 그 흔한 리본조차 달려 있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가 친절하게 빨간색 스프레이로 땅에 방향 표시를 해 두었다. 약간 이질감이 드는 방향표시법이지만 확실히 눈에 띄긴 했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쉽게 정상까지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초입에 험난한 길을 지나면 경사가 완만하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어르신들이 걷기에도 무난하다. 천천히 20여분을 걸으면 정상에 가까이 다다른다. 정상에 닿기 전에 언덕에 도달하니 친정아버니께서 앉으실 곳부터 서둘러 찾으신다. 한 번 앉으면 일으키기 힘든 육중한 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 드렸다. 정상에는 방목하는 말 무리들이 점령하고 있어 먼발치에서 정상을 바라보며 어찌해야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첫째 딸 썬이 말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그러자 말들이 신기하게 우리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썬이도 말들이 반응하자 신이 나서 더 울어댔다.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시고는 썬이에게 하지말라고 손사레를 쳐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아버지가 참 겁이 많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손녀와 할아버지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분이 우리 쪽으로 건너오셨다. 아저씨는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일깨워주시고는 날씨가 맑을 때에는 정상에서 마라도까지 보인다며 정상에 꼭 가보라고 권하시고는 말들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나는 아저씨의 행동을 살펴보며 말들이 위험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우리 일행을 설득해 정상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방목한 말들이지만 생각보다 참 순했다. 말들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섰지만 별로 반응이 없었다. 사실 그들도 우리를 경계했던 것일까? 아저씨 말씀대로 초소가 있는 정상에 서니 산방산과 서귀포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 찬 시원한 바람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야트막한 오름에 올라도 멀리까지 마을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으니 참 좋다.


정상에서 바람을 만끽한 후 내려가는 길을 찾아 한참 헤매었다. 아저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갔으나 수풀을 헤치고 급경사로를 내려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육중한 아버지에게는 무리였다. 까딱했다가는 굴러서 내려가야할 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로 가자고 되돌리고 얼마 안 가 익숙한 빨간색 스프레이로 그려진 화살표를 발견했다. “U턴”. 역시 이 분도 우리처럼 헤매다가 돌아갔구나. 반가움과 확신에 차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그날도 길잡이로서 맨 앞에 서서 다른 이들과 대화할 여유는 갖지 못 했지만 부모님 두 분이 손잡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부가 세월이 흐를수록 손 잡고 걸을 일이 참 없다. 지금 중년에 접어 든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산책로는 더더욱 손 잡을 일이 없다. 하지만 험난한 길을 걸을 때엔 서로가 다칠까 염려되어 저절로 손을 내밀고 잡는 동료가 된다. 평소에는 느끼기 힘든 사랑과 깊은 정이 오름을 오르내릴 때에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다. 이래서 오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숨겨진 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는 기회를 주니 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함께 오른 오름이라 뜻 깊었지만 가족간의 유대관계, 사랑을 돈독히 할 수 있어 더 의미있는 오름이었다.


소원해진 사이라면 함께 오름을 올라보라.
어딘가에 숨어 있던 애정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