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겨울이 싫다. 제주에 정착한 지 곧 10년을 채우게 되는데 겨울만 되면 참을 수 없이 우울증이 도진다. 제주의 봄이 너무 아름다워서인지, 여름이 너무 활기차서인지, 가을하늘이 너무 높아서인지 제주의 겨울만 오면 힘들었다. 크리스마스도 기쁘지가 않고 불안하고 다운이 되는 경험을 몇 해 하고 나서는 11월이 되면 두렵기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냄새를 맡으며 아직 오지도 않은 우울증을 맞을 준비를 했다.
'올해는 조금 덜 우울하게 지나가길...' 매번 가을만 되면 되뇌며 무리해서 히트택을 사고 겨울 신발을 장만한다. 추워지지도 않았는데 노인네같이 터틀넥에 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목도리를 두른다. 누가 보면 추운 고장에서 온 사람같이 제주와 어울리지 않는 겨울 복장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따뜻해진 겨울이라 큰일이라며 지구를 걱정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의 우울증은 조금은 덜한 기분이라 더 기분이 안 좋다. 내가 수능 칠 때는 분명 오들오들 떨면서 핫팩을 챙기고도 손이 시렸는데 12월을 맞이하고도 가을옷을 입어야 하는 날씨에 심기가 불편하다. 18도의 낮을 맞이할 거면서도 터틀넥과 히트택을 입고 출근해서 덥다고 느끼면서 겨울 신발을 사러 인터넷을 기웃거린다. 올해 겨울은 춥지도 않다는데 식구들 방한화를 하나씩 시켰다.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에 돈을 쓰는 어리석은 짓을 또 하나 보태며 '그래도 추운 것보단 낫잖아.' 하며 변명으로 가름한다. 춥지도 않은 겨울이 두려운 것도 아닌데 나는 방한화를 또 하나 마련했다. 마치 그걸 신으면 내 우울증이 나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