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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04. 2023

결혼대작전

프러포즈대작전

결혼식은 5월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4월 중순부터 신혼집에 들어갈 수 있어 먼저 들어가 살기로 했다. 남편은 전에 살던 집 계약이 남아 신혼여행 후에 이사를 들어오기로 하였다. 부모님은 결혼 전에 내가 먼저 신혼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결혼식 몇 주 전 수원 병원으로 찾아와 나의 신분증을 가지고 가 혼자 혼인신고를 하고 왔다. 지금은 혼인신고를 하려면 신랑 신부 둘 다 관공서에 가야 하지만 10년 전에는 한 사람이 상대방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할 수가 있었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누구든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무섭다.


결혼도 하기 전에 혼인신고부터 한 나는 주변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일 년은 혼인신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남편을 소개해준 선배도 결혼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갔으나 혼인신고를 안 한 상태였다. 어차피 할 혼인신고 남편이 혼자 가서 해주어 나는 오히려 편하고 홀가분했는데 그런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혼인신고도 했는데 프러포즈를 받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 주변에서도 프러포즈를 어떻게 받았냐고 물었을 때 받은 적이 없으니 대답하기 어려웠다. 결혼 몇 주 안 남은 시점이었고 프러포즈는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물었다.


“근데, 프러포즈는 안 해요?”

“아... 당연히 해야죠!”


결혼이 일주일 남은 토요일 저녁, 퇴근 후 집에 와서 뻗어있는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잠시 한강에 산책을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트레이닝복에 크록스를 신고 그의 차를 탔다.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한강으로 간다고 한 차가 외곽으로 빠지고 있었다.


“어디 가요?”

“아, 좀 멀리 산책하러 가요.”


그렇게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속초였다. 나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밤 12시에 속초에 여행온 여자가 되었다. 자기 후배가 속초에 근무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갑자기 이 시간에 후배랑 인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불현듯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 뭐 하는 거지?' 일주일 뒤가 결혼인데 이 남자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나의 6개월의 결혼준비 과정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며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이미 혼인신고도 끝냈는데... 갑자기 아찔해지며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후배와 그의 여자친구가 와서 인사를 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혼자 신이 난 이 남자는 우리를 소개하더니 갑자기 숙소를 잡아 놓았다고 했다. 나는 남자친구와의 첫 여행에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여행 와서 잠도 자고 가야 하는 여자였다. 심지어 속초는 처음이었다. 내 인생 첫 속초여행 난데없이 이상한 상황인데 아무렇지 않은 척 로맨틱보내야 하는 건가?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이 안 나왔다. 후배 커플도 있어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떠밀리다시피 숙소라는 곳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방에 수백 개의 초가 켜져 있었다. 그렇다. 이 미친 여행이 바로 나에게 하는 그의 프러포즈였던 것이다.


남편은 프러포즈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는 프러포즈를 하기로 결정했다. 프러포즈 작전속초에서 근무 중인 8살 아래 후배에게 명다. 후배는 남편이 원주에 근무할 때 커플처럼 붙어 다닌 녀석으로 불쌍하게도 하늘 같은 선배의 프러포즈 준비를 도맡게 되었다. 그러나 덤 앤 더머의 머리에서는 대단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후배의 여자친구까지 등장다.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중반의 어린 커플은 신이 나서 선배의 프러포즈 계획을 짠다. 그 계획은 호텔방에 몇 백개의 초를 켜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주 클리쉐 한 설정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유치한 계획에 감탄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형수님을 상상다. 자정이 넘어 도착할 선배를 기다리며 시간에 맞춰 초를 켜고 들키지 않게 호텔방의 키도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 생각해도 별거 없는 유치한 이벤트에 이들은 첩보작전을 펼치 듯 진지했다.


지금도 이야기한다. 그것은 후배의 프러포즈였다고. 나는 후배랑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남편이 나에게 볼 수 있었던 건 감동의 눈물이 아닌 방에 불이 안 난 게 다행이라는 한숨과 타박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이렇게 어이없는 이벤트를 계획한 남편의 순진함과 시트콤 같은 상황에 웃음이 났다. 이걸 준비하려고 이 사람과 후배 커플이 한 짓이 귀여워 이 미친 여행을 용서했다. 이벤트 결과를 호텔 밖에서 기다리던 어린 커플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밤새 속초 바닷가에서 함께 놀았다. 나는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에 해장국을 먹고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이 일은 별일 아니라고 마음속에 되뇌었으나 결혼도 프러포즈도 작전 수행하듯 해치우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나의 결혼은 점점 불안해졌고 그 불안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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