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l 03. 2023

결혼대작전

결혼이 제일 쉬웠어요


“우리 사귀는 거죠?” 만난 지 일주일이 된 남자가 말했다. 그의 말에 당황했지만 두 번째 만남에 사귀냐고 묻는 그가 이상하기는커녕 귀여웠다. ‘그래 사귀어 보지 뭐’ 하며 대답 대신 웃었다. 그렇게 그와 연인이 되어 밥도 먹고 영화도 보는 등 그동안 하지 못했던 문화생활이 늘었다. 영화는 혼자서도 볼 수 있지만 쉬는 날은 거의 침대에 붙어 있었다. 혼자 잠시 쇼핑을 다녀오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을 간간이 해왔다. 남자친구가 생기니 나의 지친 삶에도 활력이 생겼다.


일본에 유학 중인 여동생 들어오는 시점에 맞추어 가족 검진을 예약했다. 부모님이 수원에 올라오신다고 하니 남자친구가 인사를 드리겠단다. 만난 지 겨우 한 달 밖에 안되었고 아직 부모님께 남자친구의 존재자세히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 만나면 그의 존재를 설명하며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야 했다. 며칠 전 전화로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조심히 알렸으나 반응이 별로였다.


 아마직업 때문이었으리라. 엄마는 당연히 같은 직종의 남자를 만나바랐던 것 같다. 한 번도 어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지만 이번에는 싫은 티를 내신다. 다행히 아빠는 크게 싫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남자친구의 아버님이 위공무원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인 것 같았다. 남자들은 명예에 약한 편이니.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인 와중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안나 씨, 혹시 결혼식은 어디서 하고 싶어요?”


뜬금없이 결혼식장 질문이다. 별생각 없이 하게 되면 성당에서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곧 다시 전화가 왔다. 식장이 잡혔다는 이야기와 함께. 갑자기 식장이라니...


설명인즉, 부모님께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아버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식장을 예약하셨단다. 친구분이 다니는 성당에 문의하니 일 년 중에 딱 하루 비어 있다고 해서 급한 마음에 예약금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서울은 예식장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며 구구절절 설명하는 그에게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나는 오늘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식장이 잡혔다는 이야기까지 해야 했다. 부모의 허락도 없이 결혼날짜가 잡혔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천천히 설명했으나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다.


“가시나야 니 제정신이가? 남자가 그리 좋나? 그리 좋아죽겠더냐?”


엄마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되었다. 공부한다고 나이만 먹더니 갑자기 남자에 환장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시추에이션이 아닌가. 나도 이렇게 황당한데.


화가 나서 한마디도 안 하시는 엄마 눈치를 보며 저녁 식사 자리로 이동했다. 동생도 황당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분위기상 한마디도 못 하는 것 같았다. 네 식구가 어색하게 앉아 있는데 그가 도착했다. 과일바구니와 함박 미소를 장착하고.. 그는 175cm의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 뿔테안경 낀 모범생 얼굴을 한, 심지어 목소리는 이선균을 닮은 웃는 상의 서울남자였다. 다정한 서울 사람의 언변에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은 곧 첫눈에 반해버렸다. 안나를 보자마자 운명이라고 느꼈다느니 박사학위를 받고 싶어 하면 자기가 공부를 다 시켜주겠다느니 하는 그의 말발에 순진한 우리 가족 모두 그 자리에서 홀려버렸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리 딸 남자 얼굴 보네. 아이돌보다 더 잘생겼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 형부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너무 잘됐다.”

아빠는 별말씀 없으셨지만 그러면 합격이었다. 가족들의 반응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상견례나 다른 복잡한 절차 없이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다음 주에는 제가 인사를 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집에는 소개를 했고 결혼 날짜까지 잡혔는데 인사를 가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 내가 먼저 인사를 가겠다고 했다. 막상 간다고는 했는데 긴장이 되어 며칠간 소화가 안되었다. 사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뭐가 이렇게 쉬운 건가. 이렇게 이상한 기분인 건가? 결혼이 이런 거였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방배동 아파트 근처에 차를 대면서 말했다.


“결혼하면 수원으로 출퇴근이 쉬운 곳에 신혼집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전세가 별로 없으니 잠시 부동산에 들러 알아만 보고 가요.”


들어간 부동산에서 지금 집이 두 개 나와 있다며 보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갑자기 집구경까지 하게 되었다. 어떤 집이 좋냐는 물음에 리모델링이 된 집이 더 낫다고 말했다. 아버님과의 몇 번의 통화 후 집이 있을 때 계약을 해야 한다면서 갑자기 내 이름으로 계약금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아직 시댁이 될 곳에 도착도 안 했는데 갑자기 내 이름으로 신혼집이 생긴 상황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계속 이상다. ‘너무 쉽다 이 결혼... 너무 이상하다 이 결혼.. 원래 이런 건가?’ 시부모님과 식사를 하는데 아버님이 ‘우리 집은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분들의 의사 결정 과정 보통 사람의 속도와 다르다는 사실을. 고위을 역임하신 아버님은 그야말로 리더셨다. 한 가지 일에도 저 멀리 십 년 뒤를 예견하고 실행하시는 분. 그런 분이 아버님이셨다. 아버님의 가장 큰 고민은 아들이 장가 안 가고 혼자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편은 선을 몇십 번이나 보았으나 다 퇴자를 놓고 결혼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아버님은 이번에는 무조건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하셨다. 그리고 딱 두 가지만 물으셨다. 키가 크냐, 귀가 예쁘냐. 키는 아버님이 작은 편이라서, 귀가 예뻐야 복이 많 때문이라서였다. 다행히 키 큰 편이고 귀 멀쩡한 나는 결격사유가 없었다. 이어서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어디서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라고 한 뒤 성당 다니는 친구에게 연락해 결혼식이 가능한 성당과 날짜를 알아보시고는 바로 예약금을 보내셨다. 예약금은 날려도 상관없으셨단다. 이어서 나와 남편의 출근 동선을 계산하고 신혼집의 위치를 아들과 상의하셨다. 이 과정이 모두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번거로운 과정 생략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매일 당직이었고 일요일 하루만 쉴 때라 내 결혼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혼수는 없었고 내가 쓸 살림도 하루 만에  샀다.


지금도 생각한다. 결혼이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고 또 해봐도 나의 결혼은 보통의 결혼이 아님은 분명다. 그때 당시에도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지만 그냥 편안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가 만약 좀 더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신혼집에 대한 트집을 잡았더라면? 예물은 이렇네 저렇네, 식장도 내가 정하지 못했네 하며 불만을 가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혼을 결정한 뒤부터는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좋았다. 식장이나 예물이나 그런 것들은 원래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오히려 내 결혼을 위해 남편과 아버님이 애쓰는 것이 고마웠다. 그로부터 물 흐르듯 지나간 5개월의 시간에는 어떠한 잡음과 다툼도 없었다. 결혼 전날 저녁까지 열심히 일한 나는 큰 떨림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식장에 입장했다.


삶은 정말 모를 일이다. 어떠한 결정의 순간이 왔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로 인생은 결정된다. 내 인생은 그랬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 대작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