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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01. 2023

결혼 대작전

나의 운명 나의 남편

본과 2학년 때 시작된 공개 연애는 국가고시가 몇 개월 안 남았을 무렵 마무리되었다. 내 연인이었던 동기는 국시를 치고 내가 부산을 떠날 때까지 힘들어했지만 나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2년 반 동안 지속되었던 나의 도파민은 더 이상 분비 되지 않았고 나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나. 헤어짐 이후의 시간은 사랑을 먼저 끝낸 이에게도 쉽지만은 않다.


“00이랑 왜 헤어진 거야? 걔 착하잖아? 00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지?”

남의 연애에 다들 참견이 많다. 캠퍼스 연애를 끝내고 나니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끼리의 연애는 할 짓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을 보냈다. 연애를 먼저 끝내자고 한 이는 착한 남자를 버린 나쁜 여자였고, 욕하는 이들을 뒤로한 채 나는 그렇게 부산을 떠났다.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까지 나의 2년은 오롯이 병원에 바쳐졌다. 중간에 잠깐씩 썸이나, 소개팅, 몇 번의 데이트 정도를 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바빠서 관계 지속은 힘들었다. 시간 때우기로 그렇게 간간이 짧은 만남을 가졌다. 연애를 진지하게 할 마음도, 시간도, 의지도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던 고교 동창이 인사동에서 만나자고 했다. 밥을 먹고 인사동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점을 보잖다.

“내가 왜 모태솔로인지 꼭 알아야겠어.”

포장마차 같이 길게 늘어져 있는 점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세례 받은 천주교 신자였는데 오죽하면 저러려니 싶어 따라 들어갔다.

    

점쟁이 아줌마는 나의 직업을 맞추지 못했다. 속으로 역시, 믿을게 못 되군 하며 재밌게 지켜보았다. 계속 공부할 사주니 공부를 계속해라.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갑자기 “아가씨, 공무원 무시하지 마!” 하면서 갑자기 호통을 치는 것이다. 공무원이랑 결혼할 사주니 무시하지 말라는 거다. 나의 배우자로 공무원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옵션이었다. 나의 배우자는 같은 직종이나 비슷한 공부를 한 사람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기에 공무원이란 단어는 마치 처음 들어본 단어처럼 생소했다. ‘내가 평소에 공무원을 무시했나?’ 생각하며 이번생은 결혼운이 없다는 점괘를 듣고 우는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몇 주 뒤 선배가 소개팅을 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선배 남편의 선배로 직업은 경찰이었다. 솔직히 직업도 익숙지 않았고 선배가 소개해 주는 것도 부담스러워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가 해주신다고 하니 기쁜척했다. 그렇게 소개팅 날짜를 잡았다. 당시 산부인과에 근무하던 때였는데 토요일까지 당직이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뿐이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만나자고 문자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일요일 저녁에는 소개팅을 잡는게 아니란다. 토요일에 소개팅을 해야 호감이 있다면 일요일에 한번 더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변머리도 없고 바쁘기도 해서 가능한 시간으로 정한 건데 마도 더 이상 만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비춰졌던 것 같다.


약속장소 역삼동 레스토랑에서  얼굴을 자마자 이 남자가 말다.

“수원사신 다고 했죠? 밥 먹고 집에 어떻게 가실 거예요?”

“아... 저 버스 타고 갈 거예요.”  

만나자마자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남자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한 뒤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가 주문한 파스타는 맛이 없었다. 시금치가 들어간 녹색의 면이었는데 비주얼부터 별로였다. 음식과 차가운 첫인상과는 달리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두 시간 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버스정류장이 어디더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말했다.

“혹시, 차 한잔 하실 시간 있으세요? 시간이 늦어지니 제가 수원까지 모셔다 드리면 될 것 같은데...”

나는 버스 타고 수원까지 가는 일이 꽤나 고된 일이었으므로 데려다준다는 말이 반가워 그러자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의 전당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 좋아하세요? 저는 평소에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즐겨 마십니다.”

나는 커피는 잘 몰랐지만 매일 4-5잔은 마시던 사람이라 만나면 같이 커피 마실 수 있어 좋겠네라고 생각 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남자. 그런 클리쉐 한 설정이 뭐가 그리 멋있었는지. 두시간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에 '내 배우자공무원' 이란 소리가 기억나 내가 물었다.

“혹시, 운명을 믿으세요?”

나의 이 말로 이 남자는 용기를 얻어 일주일 뒤에 나에게 사귀자고 했고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 이 남자는 지금의 내 남편이라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 날짜를 잡았고 6개월 뒤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알고 보니 결코 커피를 즐기지 않았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런 척했단다. 요즘도 카페에 가면 커피도 달달하게, 주로 다른 음료를 시키는 나의 남편. 지긋지긋한 나의 수련 생활의 구세주라 생각했으나 두 나의 착각이라 결론 난 사람.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꼭 일 년은 만나보라 말하며, 돌아서 나의 어리석음에 가슴을 치게 한 남자. 가끔 ‘주님, 이 남자를 왜 저에게 보내셨습니까’ 하며 하늘 탓을 하게 되는 이 사람과 같이 산지 10년이 넘었다. 오늘도 그의 핸드폰에 10년째 나의 운명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내 이름을 보며 되뇐다.

‘아이고, 그래. 이 남자가 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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