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고는 있지만 아직도 이 질문은 진행형인 나의 화두이다.
자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늘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했다. 딱히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내세울만한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를 소개할 거리가 제법 있음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오프라인으로 이루어지던 소통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3~4년 전부터 관심 분야가 인문학으로 차츰 옮겨 가고 있던 시기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인문학 강연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똑똑한 AI 덕분에 최진석 교수님의 <책 읽고 건너가기>를 통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학창 시절 필독서라 하여 읽기는 했지만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데미안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내 속에서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세가 전하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한때, 내 삶의 질은 바닥으로 떨어져 자존감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고, 그냥 사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그냥 그렇게 포기하다시피 버려둔 내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문득문득 결코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때로는 채찍질도 해가며 그런 나 자신을 챙기며 그 고비를 넘겨왔었다.


시간은 흐르고 힘든 고비를 지나 일상의 평온함이 찾아왔지만 내 속에서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름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던 중 만난 이 첫 문장은 나를 눈물 나게 하고 말았다.

아...
내가 살아보려고 했던 바로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데미안>

내가 찾아 헤매던 그것이 나를 찾아와 준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데미안을 만나면서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려 하듯, 서서히 알에서 깨어나고자 생각의 전환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엇 하나 끝까지 해내지 못한 것이 열등감으로 여겨졌던 것이 스펙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임상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검사의 정확도에서 인정받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쌓은 신뢰는 아이가 성장하여 대학생이 된 지금도"원장님" 하고 부르며 가끔씩 안부를 물어온다. 어린이집 교사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다. 웃음과 사랑과 행복함... 이 모든 것을 나보다 더 많이 나에게 준 아이들이 내 스펙의 한 구성원이 되어 주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조카의 도움으로 수제청 창업을 하고, 카페 운영도 했다.

오래전에 ‘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티브이 드라마에서 김희성이라는 캐릭터가 한 말을 떠올려 보면서 나에 대한 소개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김희성이 꽃을 들고 약혼녀를 찾아가자 약혼녀는 남자가 연약하게 꽃이나 들고 다닌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꽃, 해, 별, 바람, 달... 같은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라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김희성의 심리를 반영한 대사였으나 나에게 그 대사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있었다.


어느 봄날, 산책길에서 노랗게 핀 민들레를 발견하고 눈물이 핑 돌았던 날이 있었다. 그 민들레를 보면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뭘 그런 걸 보고 눈물까지 흘리며 행복을 운운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사는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봄날의 노란 민들레를 만난 그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뿐 아니라 내게 민들레는 ‘행복’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나도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하늘, 달, 별, 구름, 바람, 안개, 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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