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바람

혼돈에서 질서로

전호후랑(前虎後狼)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려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뜻이다.살다보면 설상가상처럼 재앙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달아 닥쳐올 때 우리는 호랑이와 이리를 한꺼번에 막닥뜨린 심정이 된다. 때로는 나만 왜 이런 일이 생기는거냐 싶어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온화한 일상을 당연한 일상은 당연하게 여겨 그저 공기처럼 못느끼며 살아갈 뿐이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 사람에게도 사계절이 함께 한다. 아기는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큰 울음소리로 자신이 세상에 나왔음을 알린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여리고 어린 새순이 새봄을 알리듯 그렇게 사람의 봄도 시작된 것이다. 어떤 생명이든 새 생명이 올 때는 그저 온 것,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느 해 봄날 아침, 나는 오랜만에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책 한권을 챙겨 들고 집 근처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따스한 봄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여유로운 주말 아침의 산책이 브런치 카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봄햇살에 빛나는, 색깔도 선명한 노오란 씀바귀 꽃이었다.


그 꽃을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 키 작은 꽃이 이렇게 예쁜 줄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왜 나는 해마다 피는 이 씀바귀 꽃을 그 순간 새삼스레 가슴이 시리도록 예쁘고 눈물나게 감사했을까?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나태주 시인의 표현처럼 어쩌면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씀바귀꽃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 전에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으니까...


명리학에서 자연의 흐름을 볼 때 봄은 온갖 생명들이 새롭게 움트고 솟아 오르는 발산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며 확장하는 시기다. 그리고 가을은 여름의 응축 된 에너지가 발산해 놓은 것들로 결실을 맺는 계절이며, 겨울은 다음을 위한 근원을 씨앗으로 심는 계절이다. 이처럼 봄이 발산을 한다면 여름은 확장, 가을은 수렴의 계절 그리고 겨울은 하늘과 땅이 닫히는 계절이니 땅 속으로 더욱 더 수렴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양의 기운인 봄 여름이 음의 기운인 가을 겨울로 넘어 갈 때 우리는 장마와 태풍이라는 자연이 만들어 낸 거센 일기를 만나게 된다. 이 시기에 자연은 거센 태풍을 만나면서 천지의 기운이 방향을 바꾸고 멈추면서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으로 바뀐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가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 태어나서 생로병사를 거치는 동안에 겪게 되는 일은 오죽하겠는가? 그가 재벌이든 국가 최고의 권력자이든 혹은 종교계의 지도자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각자가 걸어 온 길에는 방향없이 미친듯이 불어오는 왜바람을 한 번도 맞아보지 않고 그 위치에 오르고 다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지 원망하고 한탄을 하지만 나라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때가 없진 않다. 하지만 그 불공평을 불만으로만 받아들여 불평만 하다가는 운을 뒤바꿀 역풍이 와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에 나의 은사스님께서 나에게 "아무리 큰 태풍도 3일 이상 머무는 법은 없다."라고 하셨다. 그랬다. 바람은 지나간다. 그 바람이 아무리 미친듯 방향을 잃고 나를 휘감고 돌아 정신을 못차리게 해도, 천지를 다 날려버리듯 덤벼들어도 바람은 멈추지 않고 제 갈길로 갔다. 그렇게 지나갔다.


보이고 만져지지 않아도 느껴지는 불길함, 그리고 그 불길함이 고통의 실체로 맞부딪혔을 때의 순간, 그리고 이미 일어난 고통은 피할 수 없음을 알아차리는 세 단계. 그러니 3일이다.


그렇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온 천지가 태풍 속에 휘말려 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흐트러진 그 잔해들을 보면서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우리는 살아있음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을 향해 일어설 준비를 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거대한 태풍을, 미친 왜바람을 다시 만나지 않을 것도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크든 작든 우리는 계절이 음양의 변화를 거치는 동안 장마와 거친 태풍을 만나듯 우리 또한 그럴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 계절이 지나고 나면 열매 맺고 씨앗을 보석처럼 감추고 수렴하며 성장하는 인생을 살게것이다.


장마와 큰 태풍이 지나가기를 수 십 차례. 그래도 그 순간순간을 용기내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다보면 길에서 마주친 노란 씀바귀 꽃에서도 눈물나는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감사한 순간이 보석처럼 그렇게 선물이 되어.


그렇게 혼돈도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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