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81년 금성(現 LG) 사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가전제품 광고문구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이 아니라 그 이상, 혹은 평생을 좌우하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아쉬움과 후 회가 남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정말 탁월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라고 안도하는 선택이 공존한다. 우리는 언제나 옳고 현명한 선택만 할 수는 없다.

중국고전 회남자(淮南子)에 실려 있는 새옹지마(塞翁之馬), 변방 노인의 말처럼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 화가 될지 복이 될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이런저런 예측을 해 보지만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는 내가 한 선택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선택하려 하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려 애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그때그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큰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전환점이 되는 시기에서의 선택은 광고문구처럼 10년, 혹은 평생을 좌 우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내 인생의 전환점에서 내가 선택한 것들은 온통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새옹지마에 등장하는 노인의 말처럼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내가 성장했다면 그것을 과연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만한 나를 돌아보고 반성했고 고집불통으로 이기적인 나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고, 때로는 연민으로 안타깝게 바라볼 줄 아는 아량도 생기지 않았는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눈 감고 귀 막았던 어리석음은 더 큰 상처와 고통을 불러들이게 됨을 알아 회피 대신 용감하게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막차는 이미 떠났는데 기다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어리석음은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나를 돌보는 일이 이기심이 아닌 자기의 품위를 높이는 자존(自尊) 임도 알게 되어 이제는 토닥토닥 나를 격려하고 위로할 줄 알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아버지는 나의 이혼 결정에 “그 좋은 청춘 다 보내고 이제야….”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래도 나는 그 청춘을 팔아 지금의 행복을 샀으니 이만하면 남는 장사다. 그 좋은 청춘을 팔았으나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청춘을 상처와 고통으로 딜을 했으나 상처와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 곁은 나에게 유리온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온실 밖의 세상과 적응하는 일은 낯설고 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사는 곳은 유리온실이 아니라 비바람을 피할 지붕도 추위를 막아줄 가림막도 없는 노지다. 그렇게 비바람도 추위도 견디며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간다. 큰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살아내기 위해서 더 어둡고 더 깊은 땅속으로 깊이깊이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도 어둡고 깊은 땅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2년 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고 그와 동시에 내 온실도 사라졌다. 나는 몰랐다. 홀로 되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나에게 유리온실이 되어 주고 계셨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조카 둘과 함께 아버지가 떠나신 빈 둥지에 더부살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오롯이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때로는 등이 휠 것 같은 무거운 무게로, 또 때로는 등이 허전함을 느낄 만큼 가벼운 무게로 덜어지기도 한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니 삶의 무게도 그때그때 늘었다 줄었다 한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날은 그 중력만큼 깊이 뿌리를 내려보자. 쓰러지지 않도록 더 깊고 넓게. 그러다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날은 하늘하늘 부는 바람에 몸을 실어 가볍게 가볍게 춤을 추자.

행복한 순간도 매 순간이 아니듯 고통의 순간도 매 순간이 아니다.

행복한 순간도 지나가고 고통의 순간도 지나간다. 행복 너 왔구나. 곧 지나가겠구나.

고통 너 왔구나. 곧 지나겠구나.

나는 오늘도 오고 가는 고통과 시련을 여여하게 맞이하고 보내는 연습을 한다. 고통과 시련처럼 행복과 기쁨도 그렇게 여여하게 맞이하고 보내는 연습을 한다.

2023년 초봄,

나의 이생과 저 생이 여여(如如)하기를 발원하며….


여여(如如):

분별이 끊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