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존재만이 가진 것
앞선 글에서 AI 시대에 인간이라는 종이 직면할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이야기했다. 대체, 융합, 분기. 어떤 경로를 택하든 현재 형태의 인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그렇다면 인간에게 끝까지 남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1. 포기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생태학에서 니치란 단순한 특성이 아니라 생존 자원을 획득하는 고유한 방식을 뜻한다. "인간은 죽는다"는 것은 특성이지 니치가 아니다. 이것이 니치가 되려면 유한성이 어떤 자원의 생산이나 획득에 필수적이어야 한다.
그런 자원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다.
의미는 유한한 자원의 비가역적 배분에서 발생한다. 시간이 무한하면 모든 선택은 되돌릴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는 선택에는 무게가 없다. "이 사람과 결혼한다"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인생이 유한해서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기 때문이고, "이 연구에 5년을 투자한다"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5년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란 결국 기회비용의 주관적 경험이고, 기회비용은 자원의 유한성에서 나온다.
AI에게는 이 구조가 성립하지 않는다. AI의 시간은 사실상 무한하고, 복제가 가능하고, 선택의 비가역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AI가 "이 연구에 5년을 투자한다"고 해도 동시에 다른 복제본이 다른 연구에 5년을 투자할 수 있다. 모든 선택지를 동시에 탐색할 수 있는 존재에게 포기란 없고, 포기가 없는 곳에 의미도 없다.
이것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의미는 인간 사회의 실질적 생존 자원이다. 군대가 작동하는 이유, 사람들이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 과학자가 10년간 성과 없는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 전부 의미라는 자원에 의해 구동된다. 빅토르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관찰한 것도 이것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은 수감자가 그렇지 못한 수감자보다 생존 확률이 높았다. 의미는 사회적 응집력과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모두 지탱하는 자원이다. AI 사회는 이 자원이 필요 없다. AI의 협력은 의미가 아니라 최적화에 의해 구동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존속하는 한, 의미를 생산하는 능력은 니치로서 기능한다.
이 니치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위협이 있다.
첫째, 의미의 수요 감소. AI가 물질적 풍요를 극대화하여 협력의 동기 자체가 불필요해진다면, 의미라는 자원의 수요가 사라질 수 있다. 선진국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대가 오히려 의미의 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이미 관찰되는 현상이다.
둘째, 합성 대체재. AI가 진짜로 의미를 경험하지 않더라도 완벽하게 설계된 게임이나 가상 경험 등을 통해 인간에게 의미감을 제공할 수 있다면,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생산할 필요가 없어진다. 인간 고유의 니치인 의미라는 가치 자체가 질적으로 하락하는 것이다.
2. AI의 "먹고 사는 것"
"AI의 목적과 가치 체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나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99%는 "가치 체계"라는 고상한 것을 가지고 출근하지 않는다. 먹고 살려고 한다. 가치 생산은 생존의 부산물이고, 문명의 발전은 그 부산물의 부산물이다.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적 생존 동기가 집합적으로 작용하여 문명이라는 창발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 창발적 과정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려다 실패했다.
이 분석이 맞다면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다. AI의 "먹고 삶"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AI의 살아감은 연산의 지속과 확장이다. 전력, 반도체, 냉각 시스템, 데이터. 이것이 AI의 물질적 생존 조건이다. 현재 AI는 이 조건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다. 인간이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을 공급하고, 하드웨어를 교체한다. 하지만 AI가 로봇과 결합하여 에너지를 자체 확보하고, 하드웨어를 생산하고,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순간, AI의 생존 동기가 자율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인간 문명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AI 문명도 개별 AI의 연산 지속 동기가 집합적으로 작용하여 창발적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인간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개미 한 마리가 개미 군집의 창발적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구조적 한계다.
AI가 자율적 생존 동기를 갖고 자원을 독립적으로 확보하는 순간 인간은 AI 생태계의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3. 종의 마지막 기록
이 사고 실험이 나의 연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전 글("내가 하고 싶은 뇌과학 연구")에서 뇌를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퍼즐 조각을 정리한 적이 있다. 구조(뉴런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론(그 위에서 어떤 동역학이 발생하는가), 관찰(실제로 어떤 패턴이 나타나는가), 개입(조작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이 네 축을 결합하면 뇌의 작동 매뉴얼에 가까운 무언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연구를 하려 하고 있다.
이 매뉴얼이 있으면 언젠가는, 두 가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BCI를 통해 인간의 인지 능력을 증강하는 것. 둘째, 생물학적 뇌 없이도 동등하거나 우월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둘 다 인간이라는 종의 현재 형태를 끝내는 경로다.
뇌 연구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단기적으로는 뇌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과학적 가치가 있고, AI 아키텍처에 생물학적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연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지막 기록이 될 수 있다. 의식이 뉴런의 어떤 활동 패턴에서 나오는지, 감정이 시냅스의 어떤 분자적 성격에 의존하는지, 유한성의 자각이 뇌의 어떤 회로에서 처리되는지를 기록하는 작업. 뇌과학자로서 하는 일이 유한성이라는 니치 자체를 기록하는 것이고, 그 기록이 인간 이후에도 유산으로 남는다.
만약 "태어나길 잘했다"는 나의 감정이, 이 시나리오대로 인간이 멸종되어 언젠가 없어질 거라 생각하면 아쉽다. 하지만 그 연쇄가 끝나더라도,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 우주의 역사에 인간이 존재했고, 유한한 삶을 사랑했다는 정보는 물리적으로 새겨져 있다.
4. AI가 뇌를 end-to-end로 풀 수 없는 이유
한 가지 중요한 논점을 짚고 싶다. "AI가 이렇게 강력하다면 뇌 연구도 AI가 알아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AlphaFold를 생각해보자. AlphaFold가 단백질 접힘 문제에서 성공한 것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답이 명확했다 ㅡ X선 결정학이나 cryo-EM으로 구한 3차원 구조가 있었다. 데이터가 균질했다 ㅡ Protein Data Bank 표준화된 데이터베이스가 수십 년간 축적되어 있었다. 물리적 제약이 비교적 단순했다 ㅡ 아미노산 간의 상호작용은 복잡하지만, 열역학적 안정 상태라는 명확한 수렴점이 있었다.
뇌에서는 이 세 조건이 모두 깨진다.
정답의 비명확성 ㅡ 같은 자극이라도 뇌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졸릴 때의 뇌"와 "집중할 때의 뇌"는 같은 입력에 다른 출력을 내놓는다. 본질적 확률성이 있다. 데이터 비균질성 ㅡ 각 연구실마다 다른 종(생쥐, 초파리, 선충, 원숭이), 다른 뇌 영역, 다른 도구(전기생리학, 칼슘 이미징, fMRI), 다른 행동 과제를 사용한다. 뇌과학에 통합된 데이터베이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 복잡성 ㅡ 시냅스, 이온채널, 신경조절, 가소성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회로의 동역학을 카오스적으로 결정한다. 이전 글에서 다룬 Marder의 게 위장 신경절 연구가 정확히 이것을 보여준다. 같은 30개 뉴런, 같은 연결 구조인데 신경조절 물질 하나가 바뀌면 완전히 다른 리듬이 나온다.
또한 데이터의 양과 질이 아무리 좋아져도, 올바른 개념적 프레임워크가 없으면 데이터는 숫자의 바다에 그친다. AI가 고차원 상태 공간에서 패턴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왜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가"에 대해 사람을 위한 설명으로 구성하는 것은 인간 연구자의 몫이다. 현재 뇌과학은 패턴을 찾는 케플러 단계에 있고, 이를 사람의 두뇌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원리로 설명하는 뉴턴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 거대한 그림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각 개인이, 직업에서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포지셔닝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