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의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서 있을 곳을 만들어야 한다

by 최인준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첫 글에서 "댐은 반드시 터진다, 문제는 터질 때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썼습니다. 다섯 편에 걸쳐 대체의 구조, 주도력, 외과 수술, 임상 연구, 과별 지형도를 분석하면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 전반에는 하나의 긴장이 줄곧 잔재합니다. AI와 의사 사이의 구도를 대부분 개인의 포지셔닝 전략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개인이 아무리 좋은 전략을 세우더라도, 그 개인을 만들어내는 교육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의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AI의 도입이 의대 교육 과정의 변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그 변화의 시급성에 대해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이야기해왔습니다. 이 글은 어릴 적 제 질문에 대한 제 스스로의 답변이자, 동시에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들께 꼭 전달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들, 그리고 선배 의사 분들께 이 글이 하나의 생각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0. 교육이 전제하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가치


현재 한국 의대 교육의 구조를 살펴보면,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의사가 알아야 할 지식의 총량이 존재하고, 그것을 6년 동안 습득하면 의사가 된다는 전제이다. 예과에서 기초과학을 배우고, 본과에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을 거쳐 임상 실습에 들어가며, 국가고시를 통해 지식의 습득을 검증받는다. 이후 수련 과정에서 임상 경험을 쌓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이 구조가 전제하는 세계에서 좋은 의사란,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많이 해본 의사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교육이 만들어낸 가치는 실재한다. 해부학을 배우지 않고 수술할 수 없고, 생리학을 모르고 약물 반응을 이해할 수 없으며, 수천 시간의 임상 경험 없이 환자 앞에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도메인 지식, 즉 의학이라는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는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AI가 제시한 진단의 타당성을 판단하려면 그 질환의 병태생리를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AI가 추천한 약물의 적절성을 평가하려면 약물의 작용 기전과 환자의 상태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도메인 지식이 없으면 AI의 출력은 블랙박스의 결과물일 뿐이다.

문제는 도메인 지식의 가치가 아니라 위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교육에서 도메인 지식은 의사 역량의 핵심이었다. 많이 아는 것 자체가 좋은 의사의 정의에 가까웠다. AI 시대에 도메인 지식은 핵심에서 기반으로 이동한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언어를 아는 것과 그 언어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의 차이이다. 의학이라는 언어를 모르면 AI와 대화할 수도, AI의 출력을 평가할 수도, 환자에게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언어를 아는 것과 그 언어로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을 내리고, 예외를 인지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역량이다.

이 글이 주장하는 것은 도메인 지식 교육의 폐지가 아니다. 도메인 지식 위에 무엇을 더 쌓아야 하는가, 그리고 교육의 중심축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전환에는 시간이 없다. 첫 글에서 분석한 것처럼, 세 층의 병목은 잠복기의 표면적 안정 아래에서 동시에 압력이 축적되고 있으며, 촉발 사건 하나로 연쇄적으로 붕괴할 수 있다.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잠복기에 시작하지 않으면, 새로운 역량을 가진 의사가 필요해지는 시점에 그런 의사를 양성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잠복기를 준비 기간으로 사용한 사람과 안정기로 착각한 사람 사이의 격차"라는 첫 글의 경고는, 개인만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 기반 위에 쌓아야 할 것


도메인 지식이 기반이라면, 그 위에 쌓아야 할 역량은 무엇인가.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AI 출력을 임상 맥락에서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 질환의 진단 기준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진단 기준을 모르면 AI의 진단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 지식 위에 새로운 질문이 올라온다. "AI가 이 진단을 내렸는데, 이 환자의 맥락에서 타당한가", "AI가 제시한 세 가지 치료 옵션 중 이 환자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은 무엇인가", "AI의 판단과 나의 임상적 직관이 충돌할 때 어떻게 결정하는가." 진단 기준을 아는 것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전제이지, 답 자체가 아니다.

이 역량의 핵심은 현재의 기술적 결함을 찾는 것이 아니다. AI의 기술적 성능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고, 편향 같은 문제도 기술적으로 점차 해소될 수 있다. 핵심은 AI의 출력이 어떤 조건 위에서 생성되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눈앞의 개별 환자에게 적용할 때 발생하는 간극을 판단하는 것이다. AI 모델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모델이 학습한 환자군과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환자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한다. 4편에서 다룬 평균 수렴의 한계를 교육에 적용하면, "이 AI는 평균적 환자에게 최적인 답을 내놓지만, 이 환자는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묻는 훈련이 된다. 이것은 코딩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다. 마치 현재 의대에서 통계학을 가르치는 것이 통계학자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문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의사를 만들기 위한 것과 같다.

둘째, 불확실성 속에서의 의사결정 능력이다. 현재 의대 교육은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훈련에 편중되어 있다. 국가고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5편에서 분석한 것처럼, AI 시대에 인간 의사의 역할이 가장 오래 유지되는 영역은 불확실성이 높은 의사결정이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와 함께 판단하는 능력, 불완전한 정보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의 사고 훈련이 커리큘럼의 중심으로 올라와야 한다.

셋째, AI 시대의 윤리적 판단 능력이다. 4편에서 사전 책임과 사후 책임의 구분을 다루었다. AI가 진료와 연구의 지적 작업을 맡을수록, 의사에게 남는 핵심 역할은 판단에 대한 책임이다. "AI가 설계한 치료 계획을 승인할 것인가", "AI가 설계한 임상시험 프로토콜을 환자에게 적용해도 되는가", "AI가 예외로 분류한 환자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이것은 사후 배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 판단의 책임이다. 2편에서 분석한 보험사-기술 복합체 내부에서 AI 알고리즘이 특정 환자군을 체계적으로 불리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지를 평가하는 역할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시나리오 기반의 윤리 교육은 현재 의대 커리큘럼에 존재하지 않는다.

넷째, 병원 밖의 의료 시스템을 이해하는 역량이다. 2편에서 분석한 것처럼, AI 의료의 실질적 주도력은 보험사-기술 복합체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의대 교육은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미래 의사의 상당수는 병원 밖에서 일하게 될 수 있다. AI 거버넌스, 규제 기관의 자문, AI 의료 스타트업의 임상 자문, 데이터 품질 관리. 1편에서 다룬 "MD의 환전 경로"가 바로 이 위치들이었다. 의료 시스템의 구조, 보험과 수가의 작동 원리, 규제 프레임워크의 설계 논리. 이것들은 현재 커리큘럼에 사실상 없다.

이 네 가지 역량은 도메인 지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도메인 지식 위에 쌓이는 것이다. 기반 없이는 그 위의 역량이 작동하지 않는다. 단단하지 않은 지반에 쌓은 성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2. 현재 수련 구조의 두 가지 균열


1절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즉 수련 구조 자체에도 균열이 있다.

첫째, 연구와 임상의 순차적 분리이다. 4편에서 MD-PhD가 구조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MD-PhD는 대부분 순차적이다. 임상 수련을 마치고 연구로 가거나, 연구 학위를 먼저 따고 임상으로 가거나.

임상을 먼저 하고 연구로 가는 경로를 생각해보자. 4편에서 분석한 것처럼, 가설 생성의 병목은 이미 사라지고 있고 실험 설계 역시 AI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임상 수련을 마치고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연구의 지적 작업이 이미 AI에 의해 재편되어 있다면, 전통적인 학위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AI가 더 잘하는 가설 생성과 실험 설계를 수년간 훈련받는 것이 시간의 올바른 사용인가.

반대 경로도 문제이다. 연구를 먼저 하고 임상으로 가면, 임상 현장이 이미 AI 도구로 재편되어 있다. 수년간 임상을 떠나 있던 사람이 변화된 현장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상 동료들 사이에서의 위치가 더 현실적인 문제이다. 임상 현장에서는 "같이 뛰어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수년간 연구실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에게 "저 사람은 임상을 모른다"는 시선이 따라붙고, 팀 내 신뢰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부담이 가중된다. 이 소외는 개인의 역량과 무관한 구조적 문제이다.

어느 쪽이든 "나가 있는 동안 판이 바뀌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AI가 양쪽을 동시에 바꾸고 있는 시대에, 한 쪽씩 순서대로 배우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둘째, 도제식 임상 수련의 한계이다. 현재 임상 수련의 핵심은 도제식 반복 경험이다. 많이 보고, 많이 하고, 선배와 교수의 판단을 관찰하며 배운다. 이 모델은 숙련도가 반복을 통해서만 향상되는 세계에서는 최적이었다. 그러나 AI 보조 도구가 수련 현장에 들어오면 이 모델의 전제가 흔들린다.

3편에서 외과 수술의 자동화가 다섯 단계로 점진 도입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중 처음 세 단계, 즉 AI가 술기를 분석하여 피드백을 주고, 실시간으로 위험을 경고하며, 최적의 접근법을 추천하는 단계는 수련 환경에 직접 적용된다. 수련의가 AI 피드백을 받으며 술기를 교정하고, AI 시뮬레이션에서 훈련한 뒤 로봇 보조 하에 실제 수술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는 "선배 옆에서 보고 따라하는" 기존 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변화는 외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AI 보조 진단 도구가 도입된 과에서는, 수련의가 독립적으로 진단을 내리고 그 결과로부터 배우는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AI가 이미 답을 제시하는 환경에서 수련의의 독립적 판단력은 어떻게 기를 것인가. 이것이 첫 글에서 다룬 탈숙련화의 교육 버전이다.

두 가지 균열의 근본 원인은 같다. 현재의 수련 구조가 전제하는 세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연구와 임상의 순차적 분리는 "한 쪽을 끝내고 다른 쪽을 시작해도 판이 그대로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고, 도제식 수련은 "반복 경험이 숙련도를 만든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AI가 양쪽 전제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3. 수련 구조의 재설계

Source: Mayo Clinic College of Medicine and Science, MD-PhD Curriculum webpage.


두 가지 균열에 대한 해법을 각각 다루되, 이 두 해법이 하나의 통합된 수련 구조로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섹션의 핵심이다.

첫 번째 균열에 대한 해법은 병행 수련이다. 연구와 임상을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대 과정 초기부터 동시에 경험하고 수련 전 과정에 걸쳐 양쪽을 병행하는 구조이다. 미국의 MSTP(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가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택적 트랙이 아니라 의대 교육의 기본 구조에 통합되어야 한다. 일부 학생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AI 시대의 의사 양성에 필수적인 기본 경로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병행 수련은 순차적 구조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한다. 임상과 연구 양쪽의 AI 변화에 동시에 노출되므로 "나가 있는 동안 판이 바뀌는" 단절이 발생하지 않는다. 연구-임상 병행이 의사가 되는 과정의 일부가 되면 별도의 포지션을 찾을 필요 자체가 사라진다. 처음부터 양쪽을 병행하면 "나는 연구자인가 임상의인가"라는 정체성 분열이 아니라, 양쪽이 분리되지 않는 의사과학자라는 하나의 통합된 정체성이 형성된다.

두 번째 균열에 대한 해법은 AI 통합 수련의 의도적 설계이다. 핵심 원칙은 "AI의 답을 먼저 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한 뒤, AI의 답과 비교하고, 불일치가 발생할 때 그 원인을 분석하는" 훈련 구조이다.

이 구조를 이미 실현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프로 바둑이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뒤, 바둑계는 의료계보다 먼저 "AI가 인간을 넘어선 이후의 훈련"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프로 기사들은 AI를 단순히 대전 상대가 아니라 훈련 파트너이자 분석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기사들이 AI의 수를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자신의 판단으로 수를 두고, 대국 후 AI와 복기하며 실수의 순간을 찾아내고, "여기서 다른 수를 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를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훈련한다. AI의 답을 보기 전에 자신의 판단을 먼저 세우고, AI와의 불일치에서 배우는 구조이다.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인간 바둑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었고, 과거에는 기회가 제한되었던 기사들이 AI를 통해 고강도 코칭을 받으며 급성장했다. 오히려 배움의 장벽이 AI로 인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세돌이 지적한 것처럼, AI의 답을 보고 정답을 맞추는 식으로만 훈련하면 고유한 기풍을 잃는다는 문제도 발생했다. AI를 어떻게 훈련에 통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진다.

의료 수련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AI 보조 도구가 무계획적으로 도입되면 수련의는 AI의 답에 의존하게 되고 독립적 판단력이 퇴화한다. 그러나 바둑계처럼 의도적으로 설계하면, AI는 탈숙련화의 원인이 아니라 역량 강화의 도구가 된다. 이것은 수련 커리큘럼의 설계 차원에서 만들어야 하는 구조이며, AI가 도입되었다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 설계 없이 AI가 수련 현장에 들어오면, 결과는 교육이 아니라 탈숙련화이다.

이 두 해법은 별개가 아니다. 하나의 통합된 수련 구조로 수렴해야 한다. 연구와 임상을 병행하면서, 양쪽 모두에서 AI를 훈련 파트너로 활용하되 독립적 판단력을 의도적으로 보존하는 구조. 이것이 AI 시대의 의사를 양성하는 수련 시스템의 골격이다.


4. 현실적 장벽


이 처방이 좋아 보여도 현실에서 구현하기에는 상당한 장벽이 있다. 정직하게 다루지 않으면 공허한 제안에 그친다. 장벽은 병행 수련과 AI 통합 수련 양쪽에 존재한다.

병행 수련의 장벽은 첫째, 수련 기간과 비용이다. 연구와 임상을 병행하면 전체 수련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 미국에서 MSTP가 작동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NIH의 재정 지원이다. 학비 면제와 생활비 지원이 있기에 8년의 통합 과정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이에 상응하는 재정 구조가 마련되지 않으면, 병행 수련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만의 선택지로 남는다. 둘째, 병원 인력 구조이다. 수련의는 한국 병원 시스템에서 핵심 노동력이기도 하다. 수련의가 연구에 시간을 할애하면 임상 현장의 인력 공백이 발생한다. 이것은 교육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경영의 문제이며, 후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전자가 관철되기 어렵다. 셋째, 교수진의 경험 부재이다. 병행 수련을 지도하려면 그 모델을 경험한 교수진이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 의대 교수진의 대다수는 순차적 구조에서 훈련받았다. 초기에는 해외 경험이 있는 교수진이나 외부 멘토링 시스템이 필요할 수 있다.

AI 통합 수련의 장벽. 첫째, 평가 체계의 전환이다. 현재 수련의 평가는 대부분 정답률 기반이다. 국가고시가 그렇고, 임상 수련에서의 역량 평가도 "올바른 진단을 내렸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AI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시대에, 정답률로 의사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줄어든다. "AI의 답과 자신의 판단이 달랐을 때, 왜 달랐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평가 도구의 변경만이 아니라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의 변경을 요구한다. 둘째, AI 도구의 표준화 부재이다. 바둑에서는 카타고, 릴라제로 같은 오픈소스 AI가 표준적 훈련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의료에서는 병원마다 다른 AI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수련에 쓸 수 있는 표준화된 교육용 AI가 아직 없다. 셋째, 바둑과의 결정적 차이이다. 바둑에서 AI의 답을 보지 않고 먼저 자신의 수를 두어도 실패의 대가는 한 판의 패배일 뿐이다. 임상에서의 실패는 환자의 안전에 직결된다. "AI 없이 먼저 판단하는" 훈련을 실제 환자에게 바로 적용하기에는 윤리적·안전상의 제약이 있다. 따라서 시뮬레이션 환경, 과거 증례 기반의 복기, AI의 실시간 안전망 하에서의 단계적 훈련이 필요하지만, 합의된 모델이 아직 없다.

이 장벽들은 하나하나가 무겁다. 그러나 이 장벽들을 이유로 전환을 미루면, 첫 글에서 경고한 바로 그 리스크에 교육 시스템 전체가 노출된다. 잠복기는 영원하지 않다.


5. 이 시리즈의 한계, 그리고 남는 질문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이, 이 글은 모든 문제를 포지셔닝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에 서야 하는가", "윈도우 안에서 무엇을 확보해야 하는가." 이 프레임은 개인 전략으로서는 유효하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최적의 포지션을 잡아도, 그 개인을 양성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최적의 포지션에 설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극히 제한된다. "어디에 서야 하는가"를 넘어서, "서 있을 곳 자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둘째, 이 시리즈는 의사의 역할을 "진단 → 치료 결정 → 수행"이라는 인지적 작업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임상에서 의사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이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환자 가족과의 협상, 다학제 팀 내에서의 조율,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의 트리아지, 불확실성 하에서 환자와 함께 의사결정을 만들어가는 shared decision-making. 이런 역할들은 대체라는 단어 자체가 잘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조율, 협상, 공유, 동행의 영역은 이 시리즈의 분석 프레임이 충분히 다루지 못한 곳이며, 이 영역이 미래 의사의 역할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지는 매일 환자 곁에서 일하는 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다.

셋째, 이 시리즈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특수성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분석의 상당 부분이 미국 시스템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은 단일 건강보험 체계이며, 미국의 민간 보험사 복합체가 주도하는 구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에서 AI 의료 전환의 주도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체계에서 AI 수가가 어떻게 설계될 수 있는지, 기존의 의과학자 양성 사업이나 BK21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 글에서 제안하는 병행 수련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한국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 분석 없이는 이 글의 제안이 현실적 정책으로 전환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넷째, 이 시리즈는 구조적 힘의 방향을 분석한 것이지, 그 힘이 현실화되는 속도를 예측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AI를 실제로 개발하고 임상에 도입하는 과정에는 이 글이 다루지 못한 무수한 마찰이 있다. 양질의 데이터 구축, 규제 인허가, 워크플로우 재설계, 의료진의 수용성. 이 마찰들은 하나하나가 무겁고, 현장의 실무자들이 매일 씨름하고 있는 문제이다. 다만, 마찰이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를 쓴 목적은 분명하다. 정책 제안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세대의 의사, 의대생, 의대 지망생들에게 AI 시대의 의료가 어떤 구조적 힘에 의해 변화하고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고, 각자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야를 나누고 싶었다.

이 시리즈가 답한 것은 "왜 바꿔야 하는가"이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이 시리즈의 범위를 넘어서며, 한 사람의 힘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한국 의료 시스템의 특수성을 반영한 재정 설계, 수가 구조와의 연결, 기존 정책과의 접점 분석,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 단계적 실행 로드맵. 이 모든 것이 "어떻게"의 영역이며, 이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교육을 설계하는 분들, 정책을 만드는 분들, 병원을 운영하는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를 같이 살아갈 동료 의사들과 함께.


6. 마무리


이 시리즈는 하나의 관찰에서 시작했다. AI에 의한 의사의 역할 변화는 "변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이며, 그 속도가 만드는 윈도우 안에서 무엇을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관찰이다.

여섯 편에 걸쳐 그 속도를 결정하는 구조들을 분석했다. 세 개의 병목과 비선형 연쇄 붕괴. 보험사-기술 복합체라는 예상 밖의 주도력. 외과 수술의 데이터 분절과 점진적 자동화. 임상 연구의 검증 장벽과 사전 책임의 문제. 과별 다섯 축의 지형도. 그리고 이 마지막 글에서, 그 모든 분석의 귀결점에 도달했다. 개인 전략의 한계, 그리고 교육 시스템이라는 더 깊은 층의 문제.

MD라는 시한부 무기를 영구 자산으로 환전하는 전략은 유효하다. 시술 위주의 과를 가거나 MD-PhD라는 유효기간이 가장 긴 경로을 택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환전이 가능하려면, 환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의사를 만드는 교육 시스템이 보다 굳건하게 존재해야 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고, AI의 출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그 판단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의사. 연구와 임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도구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의사. 그런 의사를 만드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댐은 반드시 터진다. 문제는 터질 때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를 더해야 할 것 같다.


터질 때 설 수 있는 곳을,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하나 있다. 어쩌면 AI에게 대체될 수 없는 의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사람에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지식을 아는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받아내고, 기계가 제시한 확률과 예측을 한 사람의 삶의 맥락 안에서 해석해 주는 일이다. AI의 출력은 점점 더 정교해지겠지만, 그 출력 앞에서 환자의 눈을 보고, 맥락을 읽고,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책임은 여전히 사람이 져야 할, 그리고 질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말하면, 첫 글을 올릴 때는 이것이 여섯 편의 시리즈가 될 줄 몰랐습니다. 한 편을 쓸 때마다 독자분들의 질문과 반박이 다음 글의 방향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반박해주신 분들 덕분에 논지가 더 단단해졌고, 공감해주신 분들 덕분에 다음 글을 쓸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 글들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을 쌓아가는 과정의 기록입니다. 틀린 부분도 많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수정해야 할 부분도 생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 이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믿습니다. 부족한 분석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들에게 작은 생각의 씨앗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씨앗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답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왜 바꿔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이제 함께 만들어가야 할 이야기입니다. 같은 시대를, 같은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동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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