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변함없이 사용된 나의 도구
2000년대 초,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온라인 입찰을 통해 조달 원가를 낮추는 솔루션을 주력 상품으로 삼고 있었다. 일본 각지의 기업을 대상으로 전자입찰 시스템을 제공하고, 시작가 설정이나 거래처 알선 등 입찰 관련 컨설팅을 통해 원가 절감에 기여한 경우, 절감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비록 내가 직접 담당하던 솔루션은 아니었지만, 회사의 핵심 제품인 만큼 원하든 원치 않든 관련 업무에 종종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사 중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굵직한 기업들도 많았는데, 문제는 이 솔루션이 각 기업별 맞춤형이 아닌 공통 플랫폼 기반으로 제공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기능적인 제약이 많았고, 고객들 사이에서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존 입찰 이력을 기반으로 부서별, 절감률별, 절감액별 통계를 내고 한눈에 확인하는 등의 기능이 미흡하다는 점은 자주 지적받던 사항이었다.
홋카이도에 위치한 한 고객사는 그런 제약을 자체적으로 보완하고 있었다. 그 회사의 한 직원이 입찰 실적을 출력하여 개별 파일로 정리한 뒤, 이를 보기 좋게 가공해 상부에 보고하는 액세스(Access) 기반 툴을 자력으로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퇴직한 직후 발생했다. 마침 우리 본사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로 출력 파일 형식이 바뀌면서, 기존 액세스 툴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적 보고가 중단되자 고객사에서는 당황했고, 우리 회사에 강하게 항의해 왔다. 하지만 일본 지사 입장에서는 본사에서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되돌릴 권한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액세스 툴은 우리 회사가 만든 제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사는 우리 쪽에 툴 수정을 요청했고, 문제는 당시 일본 지사에는 그 작업을 맡을 개발 인력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학생 시절 간단한 프로그래밍 경험이 있었고, 회사 내 데이터베이스 관리 실무를 맡으면서 엑셀 기반 도구를 자주 만들던 내가 결국 적임자로 낙점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쩔 수 없이 홋카이도로 1박 2일 출장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내 노트북에는 액세스가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내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닌 복잡한 툴을 고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홋카이도까지 와서 아무 성과 없이 돌아갈 수도 없어, 결국 액세스 대신 엑셀을 기반으로 유사한 기능을 구현한 매크로 툴을 새로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다행히 고객도 이를 받아들였고, 출장도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나 벌어졌다. 나는 이미 회사를 퇴사한 뒤였고, 담당했던 솔루션은 다른 회사에 매각되어 우여곡절 끝에 새로 생긴 법인의 일본 지사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홋카이도의 그 옛 고객사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아직도 내가 만들어 준 엑셀 툴을 그대로 사용 중인데, 최근 시스템 변경으로 인해 입력 파일 형식이 바뀌면서 업무가 마비되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만든 아마추어 매크로 툴을 일본의 대기업이 7년이나 계속 써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미 거래 관계도 없고 도와줘야 할 의무도 없었다.
그때 그 툴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고, 언젠가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조직이 크고 절차가 복잡한 대기업일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법이다. 결국 ‘지금 잘 돌아가고 있으니 굳이 바꿀 필요 없다’는 논리가 우선되었고, 그렇게 내가 급히 만든 엑셀 툴이 하나의 인프라처럼 굳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연락도 완전히 끊겼고, 그 회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 누군가 그 엑셀 파일을 열어보며 ‘이거 누가 만든 거지?’ 하고 궁금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는 건 꼭 대단한 발명이나 작품이 아니라, 때로는 그런 사소한 매크로 파일 하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