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의 벼락공부
통역을 업으로 삼은 이후, 하루하루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매일 아침은 마치 시험 당일처럼 시작된다. 오늘 어떤 회의가 있을지, 어떤 단어가 등장할지, 어떤 분야의 신조어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날 밤이나 아침 일찍 전달받은 자료 몇 장, 회의 제목 하나만을 가지고 머리를 싸매고 벼락공부를 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 분야 전문가들 앞에서 즉석에서 통역을 해내야 한다.
간혹 사전 정보 없이, 갑자기 중요한 회의 통역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는 가벼운 회의만 있다고 들었던 날 아침, 자동차 회사 지사장과 생산 최고 책임자들이 참석하는 조직 개편 회의 통역을 갑자기 맡게 됐다. 자료는 없었고, 회의 제목 하나만 보고 흐름을 짐작해야 했다. 다행히 30분짜리 회의였기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그 짧은 30분이 얼마나 긴장이 되는 시간인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더 힘든 것은 말을 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말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발언할 때다. 문장은 끝나지 않고, 논리는 뒤엉기며, 주어와 목적어는 도중에 바뀐다. 말하는 사람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언할 때, 통역사는 오히려 상대의 생각을 대신 정리해주는 ‘편집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통역사는 창작자가 아니다. 말을 만들어낼 수는 없고, 맥락과 흐름을 읽어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통역을 오래 한 선배가 말하길, 10년 넘게 이 일을 했어도 "오늘은 완벽했다"는 날은 없었다고 한다. 통역은 단 한 번의 리와인드도 허락되지 않는 생방송이고, 한 번 지나간 말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매번 회의가 끝나면 되돌릴 수 없는 한 문장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말은 이렇게 바꿨어야 했나, 저 표현은 너무 직역이었나, 말이 너무 길었나 짧았나—끝없는 자기검열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역을 계속하는 이유는, 가끔 과거의 문맥과 용어가 축적되어 ‘이해하고 있는 상태’로 회의에 임할 수 있는 날, 통역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기분 좋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에 ‘ししゅうず(試終図-試作最終図)’가 뭔지 몰라 당황했지만, 다음 회의에서는 그것이 Final Prototype Drawing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훨씬 수월하게 통역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통역은 점점 사람의 말을 넘어서 조직의 구조와 흐름을 번역하는 일이 된다.
지금의 통역 업무는 예전처럼 매출이나 고객 관리, 프로젝트 성과로 평가받는 일이 아니다. 통역이라는 역할은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내 어깨에서 내려간다. 한발짝 물러나서 회의와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은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회의에서 오가는 단어와 분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면,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corporate world에서 치이고 밟히던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회의의 권력 구조, 사람들의 발언 톤, 조율되지 않은 현장의 긴장감—all too familiar. 나는 더 이상 그 세계에 속해 있지 않지만, 여전히 그 잔향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왜 나는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배운 영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며 통역을 하고 있는 걸까?"
한국어는 내가 잠든 꿈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언어인데, 지금 나는 두 개의 외국어를 붙잡고, 그 사이의 틈을 메우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길을 강요한 적은 없지만, 이민자로서의 경로, 일본에서의 경력, 그리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현재의 조건들이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이었는지, 환경에 의해 흘러온 결과였는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어쩌면 그 두 가지가 모두였는지도 모르겠다.
간혹 사람들이 묻는다.
“그럼 꿈은 무슨 언어로 꿔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꿈속에서 내가 무슨 언어로 말했는지는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꿈속에서도 나는 종종 통역을 하고 있다.
어느 언어에서 어느 언어로 통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조율하고, 맞춰주고 있다. 그만큼 이 일은 내 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다.
오늘도 나는 회의가 시작되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흐름과 의미에만 집중한다. 존재감 없이 정확하게, 개입 없이 명확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회의실의 한 자리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