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를 읽는 두 개의 코드
일본에 살고, 일하며, 일본 사람들과 함께 시스템을 만들고 회의를 하고 고객을 상대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자주 마주했다. 바로 ‘한 화면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넣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UI(User Interface)를 설계할 때도, 일본 고객들은 스크롤 없이 모든 항목을 한눈에 보고 싶어했고, 탭을 나누는 것도 되도록 피하려고 했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 화면에 빽빽하게 들어가 혼란스러워 보이더라도, 일본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친절함’이나 ‘신뢰감’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이런 시각 문화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서도, 웹사이트에서도, 관공서의 안내문이나 서류 양식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요즘은 글로벌하게 ‘심플 이즈 베스트’가 트렌드지만, 일본에서는 ‘많이 보여주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자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원형을 본 것은 에도시대의 "가와라방(瓦版)"이었다. 일본 국립박물관에서 마주한 실물 가와라방은 단지 역사적 기록물이 아니라, 현대 일본 정보 디자인의 시각적 조상처럼 느껴졌다. 그림과 텍스트가 촘촘히 배치된 한 장의 인쇄물에는, 지진이나 화재 같은 뉴스뿐 아니라, 스모 선수와 가부키 배우의 소문, 세간의 풍문과 괴이한 현상까지 다양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시 종이는 귀했고, 목판 인쇄는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한 장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하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시각적 압축과 정보 과잉은 효율이자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미학은 현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정보란 압축해서 한눈에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과 감각으로 남았다. 가와라방은 일본 시각 정보 문화의 조상이며, 지금도 일본 사회에 깊이 각인된 정보 미학의 무의식적 원형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 유산과는 별개로, 일본 사회에서 더 본질적인 구조적 특성 하나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변화에 대한 저항’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통역으로 일하면서, 매 회의마다 처음 듣는 약어나 신조어가 등장하고, 설명 없이도 ‘알아듣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이미 상식화된 단어조차도 뉴스에서 일일이 설명하고, 모든 절차와 배경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은 정보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신중함이 뿌리 깊게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차이는 언어 번역과 표현 수용 방식, 그리고 대중 매체의 대사 작성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한국에서는 원문에 충실한 ‘직역체’ 표현이 다소 어색하더라도 원래의 감각을 살리려는 시도가 많다. 그런 번역투 말투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고, 문학이나 영상 자막에서도 자주 쓰인다.
반면 일본에서는 외국어 번역에서도 이미 존재하는 ‘일본어의 틀’에서 벗어나는 표현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새로운 문장 구조를 시도하면 “그런 일본어는 없다”, “일본어답지 않다”는 식의 반응이 먼저 나오기 쉽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사가 왠지 현실감이 없고 ‘연극적’으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지 배우의 연기 톤 때문이 아니라, 대사를 쓰는 방식 자체가 현실 언어와 일정한 괴리를 전제로 한 정형화된 형식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투와는 상당히 다른 문장들이 대본 속에서는 여전히 관습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는 일본어 표현에서 ‘자연스러움’보다 ‘틀에 맞음’을 우선시하는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IT 도입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도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변화 자체를 꺼리는 사회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IT란 본질적으로 기존의 절차를 단순화하고, 필요 없는 업무와 사람을 줄이며, 유통 구조나 관행을 재구성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일본 사회에서는 IT를 그런 혁신의 도구로 보기보다는, ‘기존 방식을 자동화해주는 도구’, 마치 연필 대신 샤프를 쓰는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도장을 없애고 전자 서명을 도입하자는 논의보다는, 로봇이 대신 도장을 찍어주는 시스템이 나오고, 음악이나 영상도 스트리밍이라는 개념보다는 여전히 실물 미디어 중심의 유통에 집착한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가 단지 낯설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변화가 기존 사회 구조 자체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저항은 일상적인 상업 브랜드의 정체성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유통 공룡 월마트(Walmart)의 일본 진출과 철수 과정이다.
한국에서는 월마트가 철수하자마자 그 자리를 이마트가 매수해 곧바로 브랜드 전환을 단행했다.
점포 외관도, 직원 유니폼도, 영수증과 쇼핑백까지 단기간에 완전히 바뀌었고, 소비자들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달랐다. 월마트는 2002년에 세이유(西友)를 매수했지만, 세이유라는 브랜드를 끝까지 유지한 채 점포 운영을 계속했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세이유였지만, 본사 명칭은 월마트재팬으로 바뀌었고, 쇼핑백에 Walmart 로고를 작게 넣거나, 제휴 신용카드를 ‘Walmart 카드’로 교체하는 등, 브랜드 정체성을 서서히 바꾸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 소비자들은 세이유를 월마트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월마트가 자사 PB "그레이트 밸류"를 일본에 도입했지만 실패했고 일본 독자 브랜드 "みなさまのお墨付き"가 성공했다. 월마트의 글로벌 성공 비지니스 전략은 일본에서는 하나도 통하지 않았고 결국 월마트는 일본 시장에서 브랜드 전환에 실패한 채, 2020년 모든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이 사례는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변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단지 상호나 로고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 세계 속 익숙한 것의 변형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디지털 전환도, 단순히 시스템을 설치하는 문제를 넘어서, 사용자의 감정, 문화, 정체성 전체와 부딪히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섬나라였고, 에도시대 동안 오랫동안 쇄국 상태였다. 중국이나 조선처럼 중앙집권적 문치 국가가 아니었고, 전국 곳곳을 각 영주가 나눠 다스리는 분권 체제였다. 무사 계급 중심의 지배 구조 속에서는 과거시험을 통한 출세나 수직 이동의 기회도 없었고, 문치의 전통은 단절되었으며,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고정되어 세습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다. 변화란, 권력의 이동이나 질서의 붕괴를 의미했기에, 자연스레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변화보다는 순응과 관습의 지속을 택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일본의 디지털화 지연은 단지 기술 수용의 늦음이 아니라, 문화와 제도가 ‘변화를 일으키는 힘’ 자체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일본 사회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층위를 함께 봐야 한다. 하나는 정보를 어떻게 표현하고 소비하는가에 대한 미학적, 시각적 감각—가와라방에 그 뿌리를 둔 정보의 밀도와 친절함. 또 하나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저항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문화—섬나라의 고립, 무사 지배, 신분 세습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내재된 변화 회피 성향.
이 두 코드는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 사회의 현재를 함께 지탱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과 함께 일할 때 종종 마주치는, 어딘가 낯설고도 질서정연한 풍경의 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