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였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라

압도적으로 부유했던 일본의 전성기와 그 후유증

by 쿨파스

일본은 한때 세계 경제의 정점에 있었던 나라였다. 1980~90년대 초 버블경제 시절, 고속 성장과 고급 소비가 성행했고 당시의 일본은 '1억 총중류'라는 환상 속에서 국민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의식을 공유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30년이 넘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경제성장률은 정체되었으며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도 심각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과거의 번영을 상징하는 풍경이 남아 있다. 일본은 마치 '부자였던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나라처럼 보인다.


일본에서 자주 쓰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도 생각해보면 웃기다. 원래는 1990년대 일본의 경기 침체를 가리켜 서구 언론에서 "lost decade"라 불렀고, 이는 일시적인 후퇴와 회복 가능성을 전제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침체는 20년, 30년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단순한 '잃어버림'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정체로 자리잡았다. 서구권에서는 더 이상 일본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하지 않지만, 일본 안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기준 삼아 지금을 예외적 상태로 보는 자기기만적 수사가 반복된다. "잃어버린"이라는 말은 현실 인식의 실패이자 책임 회피적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전형적인 병폐인 "바보의 한가지 배움"으로 이 말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임팩트 있는 표현이었는지 몰라도 아직도 그 말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현실을 새롭게 보고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몇년 전 잠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 후쿠시마현 이나와시로호 인근의 한 스키장에서 인상 깊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도쿄에서 출발하는 왕복 고속버스, 리프트권, 장비, 웨어 렌탈까지 모두 포함된 1일 스키 패키지의 가격이 7,000엔도 되지 않았다. 버블 시기에 과잉 투자로 전국에 200개가 넘는 스키장이 생긴 일본에서는, 지금도 이런 시설을 유지하려면 저렴한 가격의 패키지 투어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용한 버스에도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고, 스키장에서 눈을 처음 보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과거 동남아에서 돈을 아낌없이 쓰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묘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한편 캐나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토론토에서 가까운 블루마운틴 스키장을 방문했을 때는, half-day 리프트권만 구입해도 100달러에 달했던 기억이 있다. 숙박과 장비 렌탈까지 포함하면 하루 스키 비용은 몇 배로 불어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일본의 스키장이 아직도 버블기의 물리적 유산에 기대어 '경제 논리와 동떨어진 가격'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나마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토치기현 기누가와 온천이나 군마현 이카호 온천 같은 지역은 한때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유명 휴양지였지만, 지금은 방치된 건물과 텅 빈 거리로 대표되는 '폐허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일본 버블기의 전설같은 얘기는 한떄 잘나갔던 일본 샐러리맨들의 과거 추억에 남아있다. 도시바 테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지인한테 들은 것은 1980년대 후반, POS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던 시기 실적이 우수한 영업사원들을 위한 보너스 파티가 열렸는데,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가는 야행열차 한 칸을 통째로 대절해 ‘테크호(TEC号)’라 이름 붙이고 열차 안에서 술을 마시며 돈다발로 보너스를 나눠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도 어려운 풍경이지만, 당시에는 기업도, 개인도 화려하게 쓰고 즐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대였다.


아내의 조부모님은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할아버지는 스포츠카인 닛산 페어레이디를 타셨고 할머니는 하와이 여행과 훌라댄스를 즐겼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중산층도 이런 생활이 가능했다. 반면 필자의 외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의 방직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으며,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990년대까지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뒷산에서 불쏘시개를 갈퀴로 긁어 망태에 담아 오고, 외양간의 소에게 줄 쇠죽을 끓이는 일상을 살았다.


내 자식들을 포함해서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과거의 부유했던 시절을 체감하지 못한다. 경제는 정체되어 있고, 부모 세대는 소비를 줄였으며, 사회 전반에는 절약과 체념의 분위기가 흐른다. '옛날엔 하와이에 자주 갔다', '보너스를 돈다발로 받았다'는 말은 실감도 나지 않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아내는 고등학생 때 하와이에 가본 적이 있지만 나와 아이들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일본은 여전히 부유했던 시절의 영광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공공요금, 교통요금, 행정 시스템 등은 과거의 높은 기준에 머물러 있고, 구조 개혁은 끊임없이 뒤로 미뤄진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새로운 미래를 그리기 어려우며, 노년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환상 속에 머물러 있다. 한 끼 1,000엔의 점심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시대임에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1,200엔짜리 푸아그라나 트러플을 얹은 햄버그 스테이크를 팔고, 마트에서는 페트병에 담긴 프랑스산 보졸레 누보 와인이 700엔에 판매된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외국의 사정을 모르고 일본이 여전히 부자 나라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과거의 부유했던 시절의 기억은 점점 현실과 동떨어져 가고 있으며, 그 간극은 세대 간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언제까지 일본은 그 꿈을 꾸고 있을까. 일본이 압도적인 선진국이었다는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한 세대들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일본 사회는 여전히 그 꿈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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