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한자 활용도가 떨어지는 일본어
한국과 일본은 모두 한자 문화권에 속하며, 어휘의 상당 부분이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두 나라가 새로운 개념을 수용하고 이를 언어화하는 방식, 즉 한자어를 조어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자세히 보면 다르다. 일본은 한자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새로운 한자어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제약이 많다. 반면 일상 생활에서 한자 표기를 사실상 버린 한국이 오히려 한자어 조어에 있어서 더욱 유연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은 사회 전반적으로 '일반인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언어 표현을 규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0여개의 상용한자(常用漢字)라는 범위 내에서만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며, 그 외의 한자는 히라가나로 표기하거나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한자로 통합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선거에서는 "당선"되고 복권은 "당첨" 되지만 일본어는 두 단어의 발음이 같고 당첨의 첨(籤)이 어려운 글자라는 이유로 当せん이라고 "당선"과 구별 없이 쓴다. 약물 남용은 濫이 어려운 한자라서 乱用이라고 바꿔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을 때,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보다는 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Carbon Neutral을 직역한 '탄소중립'이라는 한자어 조어가 널리 사용되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カーボンニュートラル'이라는 외래어 표현이 더 일반적이다. 한자로 직역해서 "탄소 중립"이라고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니까 아예 그냥 외래어를 쓰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생태계"라고 번역되는 Ecosystem도 그냥 가타카나로 エコシステム으로 쓴다.
한국은 비록 한글 전용을 채택했지만, 여전히 많은 새로운 개념이 한자어 형태소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탄소중립', '사용자 경험' 등은 모두 비교적 최근에 생성된 한자어 조어로, 행정이나 언론등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비록 한자를 몰라도 구성된 음절의 형태소 기능을 통해 의미를 유추할 수 있고, 이런 조어들은 간결하면서도 정보 전달력이 높아 실용적인 표현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문자와 음운 구조의 차이와도 관련 되어 있다. 한국어는 한자 한 글자가 한글 한 음절과 1대1로 대응하며, 발음도 대부분 한가지로 고정되어 있어 새로운 단어가 등장해도 비교적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일본어는 한자 한 글자에 여러 가지 음독과 훈독이 존재하고, 이를 가나로 풀어쓸 경우 글자 수가 많아지고 발음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여러 글자가 조합된 경우 각각의 글자에 따라 또 생소한 발음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는 한자의 조합이라도 처음 보는 조합이라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生水”라고 쓰면 한국인은 누구나 "생수"라고 읽을 수 있지만 일본인은 生과 水의 조합이 일상적으로 쓰는 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일본인이 한자를 읽는 방법은 한 글자씩 읽는 게 아니라 마치 불규칙한 영어 단어 스펠링처럼 한자 두세자로 된 단어 단위로 인식해서 읽는 것이다. 海老라고 쓰고 "에비"라고 읽는 것 처럼 말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도 중국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생소한 개념의 한자어를 받아들이는 데 일본인은 매우 보수적이다. 예를 들어 "탈북자"라는 말이 일본에 정착된 과정도 흥미롭다. 초기 일본 언론은 이를 '북조선 망명자(北朝鮮の亡命者)'나 '북조선 탈출자(脱出者)' 등으로 설명했으며, '탈북자(脱北者)'라는 직접적인 용어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02년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탈북 가족이 진입을 시도했다가 중국 공안에 의해 제지당한 장면이 영상으로 보도되면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탈북자'라는 표현이 일본어로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사례는 새로운 개념어가 사회적 충격과 함께 도입될 때 비로소 정착되기도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한자를 쓴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한자어 조어에 강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한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어 환경은 보수적으로 굳어서 생산성에 한계가 있는 반면, 한국은 한자 표기를 버리고도 한자어의 형태소를 자유롭게 결합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수용하는 데 훨씬 능동적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자 사용의 차이를 넘어, 언어를 통한 사고와 표현의 방식에서 양국 간의 문화적 태도 차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이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면서도 한자를 버린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는 중요한 착각이 숨어 있다. 한자는 원래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이며, 그 주변 국가들은 각기 다른 언어 구조 속에서 이 문자를 자국어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오늘날, 베트남, 몽골, 한국 등 주요 주변국 가운데 자국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나라는 더 이상 없다. 일본어만이 예외적으로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방식도 본래 한문을 풀어 읽기 위해 보조적으로 개발된 '가나'를 억지로 표기 체계로 전용한 측면이 강하다.
애초에 언어란 본질적으로 ‘음성’이다. 문자는 그 음성을 시각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음성을 정확하게 표기하고, 다시 음성으로 재생할 수 있다면 문자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다한 것이다. 그런데 '한자어니까 반드시 한자로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왜 'hamburger'나 'cheese'처럼 외래어로 받아들인 영어 단어들을 원어 그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하지 않고, 가타카나로 쓰는가?
이는 결국 문자의 본질이 ‘기록 수단’이라는 점을 간과한 채, 한자 사용 그 자체에 집착하는 문화적 관성이 드러나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