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이 아닌 다름: 언어를 바라보는 시선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하며 현대 일본어 수업을 여러 차례 수강했다. 그 시절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급생 중에는 지금도 평생 친구로 이어진 이들이 있고, 그때 쌓은 일본어 지식은 지금도 내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시절 인상 깊었던 기억 중 하나는, 한국에서 흔히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일본어의 가타카나 외래어 발음에 대한 외국인 학생들의 태도였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마쿠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 같은 발음이 영어 실력이 부족한 일본인의 웃긴 영어로 비하되곤 한다. 하지만 정작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고 있는 영어권 학생들은 그것을 결코 웃기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어 어휘의 일부로서 진지하게 외우고 연습했으며, 실제 일본 현지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태도가 훨씬 더 건강하고 건설적이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 역사, 발음 체계, 문자 환경 위에 형성된 것이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언어 표현을 단지 우리 기준에서 이상하다고 해서 비웃는 것은 문화적 편협함일 뿐이다.
비슷한 예는 한국어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어권에서 봤을 때 어법상 어색한 표현인 "파이팅(fighting)"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고유하게 정착된 응원의 표현이 되었고,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조차도 자연스럽게 "화이팅!"을 외친다. 그 누구도 그것을 비웃지 않는다. 나는 어릴 때 한국인들이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혹시 영어권 사람들이 "영어도 제대로 못 쓰는 바보 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언어는 다수에 의해 사용되면 그것이 새로운 규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전 세계에는 원래는 문법적으로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했던 표현이 고유 언어로 정착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카리브해 지역에서 쓰이는 피진어(pidgin)와 크레올어(creole)는 서로 다른 언어권 사람들이 서툰 언어로 소통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고유한 문법과 어휘를 가진 새로운 언어로 발전한 경우다. 영어에서도 흔히 쓰이는 "Long time no see"라는 표현 역시 원래는 중국어 "好久不見"의 직역에서 유래한 비문법적인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원어민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일상 표현으로 굳어졌다.
결국 언어란, 의미를 전달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수단이며, 어떤 표현이 낯설고 어색해 보일지라도 그 사회 안에서 살아 있는 언어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른 언어와 표현을 대할 때 우리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먼저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언어 학습자, 더 나아가 성숙한 문화인의 자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일부 한국인들이 한글이 세계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라고 믿는 경향이다. 물론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곧 모든 언어의 음운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음성학 수업을 대학에서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글로는 표기하기 어려운 소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애초에 대부분의 문자 체계는 그 언어 고유의 발음 체계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다른 언어의 소리를 모두 표현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전 세계 언어의 소리를 포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국제 음성 기호(IPA: 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이지만, 이조차도 완벽한 도구는 아니다. 모든 언어의 소리를 완벽히 표기할 수 있다는 건 이상에 가깝고, 실제로는 사용의 효율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타협을 볼 수밖에 없다.
내가 토론토 대학에서 음성학 수업을 들었을 때 흥미로웠던 점은, 정작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조차 IPA 기호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나는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사전을 통해 국제 발음 기호를 접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보다 IPA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지식이 더 있었던 셈이다. 언어와 문자에 대한 이러한 경험은, '자국 언어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려는 시도 자체가 학습의 출발점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