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맥락 사회에서 저맥락 사회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회 vs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회

by 쿨파스

고맥락(high-context) 사회와 저맥락(low-context) 사회라는 개념이 있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의도가 전달되곤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비언어적 신호나 공기, 눈치, 분위기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규범이나 예의도 암묵적인 형식으로 유지된다. 한국이나 일본이 바로 그런 사회이다.


내가 일본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도 바로 이 고맥락 특유의 ‘당연한 규칙들’이었다. 예를 들어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 일본에서는 보통 접시의 절반만 소스를 끼얹어 숟가락으로 떠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전부 비벼서 먹었는데,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초리를 느껴야 했다. 또 일본식 닭튀김인 가라아게를 먹을 때는 별생각 없이 우스터 소스를 뿌렸는데, 동료로부터 “가라아게는 이미 간이 되어 있으니 소스를 뿌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는 별것 아닌 사소한 습관이었지만, 일본에서는 그조차 ‘틀린 행동’이 되어버렸다.


이런 경험은 일본에 가기 전부터 이미 겪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내가 캐나다에 살던 시절 일본인 친구와 함께 한국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짜장면을 비빌 때 자연스럽게 양손에 젓가락 한 짝씩 들고 비볐는데, 그 일본인 친구가 "그건 식사 예절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고, 일본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기에, 그 지적이 꽤 신경 쓰였다. 결국 나는 그 후로 짜장면 뿐 아니라 비빔면류를 먹을 때 일부러 젓가락을 한 손에 쥐고 비비는 습관을 들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양손 젓가락은 내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서 배운 방식이었다. 한국 음식을 한국 방식으로 먹는 데 대해 일본인이 뭐라고 했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자신감이 부족했고, 상대방의 문화적 기준에 쉽게 흔들릴 만큼 정체성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본능적으로 자제하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 접하는 상황에서는 내 방식대로 행동하기보다는, 우선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심지어 직장 동료들과 온천 여행을 갔을 때도, 방에 들어가자마자 유카타로 갈아입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미리 누군가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런 ‘눈치 보기’는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때로는 노이로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사회의 정형화된 행동 패턴에 순응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본능적으로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본 사회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일본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취향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와 뻔뻔함은 정말 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생겨났다. 모든 상황마다 정해진 방식이 있고, 그 방식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튀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사회. 일본은 바로 그런 ‘고맥락’ 사회의 극단적인 예였다.


반면 캐나다, 특히 토론토에서의 생활은 정반대다. 이민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도시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며, 사람들은 출신도 가치관도 제각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내가 기대하는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원칙—예를 들어 존중, 동의, 명확한 설명, 공공 규칙—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고맥락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전제 아래 행동한다. 예를 들어, ‘집 안에서는 신발을 벗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활 습관은 거의 절대적인 규범으로 여겨지며, 이를 어기면 예의 없거나 비위생적인 사람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래서 종종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로부터 “캐나다에서는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나요?”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질문 속에는 마치 ‘나라별로 정해진 정답이 있고, 캐나다라는 나라는 하나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캐나다에서는 집 안에서 신발을 벗는지 여부조차도 집집마다, 개인마다 다르다. 아시아계 가정에서는 신발을 벗는 경우가 많고, 요즘은 백인 가정에서도 벗는 집이 많지만, 어떤 가정에서는 끝까지 신발을 신은 채로 생활하기도 한다. 심지어 캐나다인들 사이에서도 “신발을 벗는 것이 예의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타인의 집을 방문 할 때 신발을 벗을 것을 요구 하는 것은 무례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도 있다. 즉, 국가 단위의 문화가 아니라 ‘각 가정의 문화’ 혹은 ‘개인의 선택’에 가까운 문제다.


이처럼 저맥락 사회에서는 당연한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일상적인 생활습관조차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행동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물어보지 않으면 실수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맥락 사회에서는 눈치를 보는 대신, 미리 물어보고, 자신의 방식을 설명하고,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다문화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저맥락 사회는 피곤한 동시에 자유롭다. 눈치나 분위기에 휘둘릴 필요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존중받는 방법이다. 내게는 이곳 토론토의 일상이, 과거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유럽, 북미, 동남아 각국의 관계자들과 영어로 국제 회의를 하던 그 감각과 매우 닮아 있다. 일본에 있을 때는 ‘국내 감각’과 ‘해외 출장 감각’이 완전히 별개였지만, 이곳에서는 그 둘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결국 고맥락 사회와 저맥락 사회 중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토론토는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룰을 명확히 하자’는 철학 위에 세워진 도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자 도시에서의 생활은, 국제 무대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일상화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이런 다문화 사회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엄격하다는 점이다. 서로의 관습은 다를 수 있지만, 인종 차별, 성희롱, 폭력, 혐오 발언과 같은 보편적 윤리와 인간 존엄에 관한 원칙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강한 합의가 존재한다. 이러한 합의는 국가가 크고 다양한 집단이 섞일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사회 전체의 운영 원리로 자리잡는다.


반대로, 고맥락 사회에서는 이러한 보편 규칙이 명문화되지 않거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의 모호함 속에 쉽게 무시되기도 한다. 특히 친분, 정, 유연함이라는 이름 아래 기득권이나 내부 집단의 편의가 우선시될 때, 그 결과로 사회의 약자나 외부인은 배제되기 쉽다. 공정과 정의보다 관계와 분위기가 앞설 때, 원래 이상과 도덕이 담아야 했던 사회적 합의는 쉽게 왜곡되거나 사라진다.


본래 도덕이나 이상이라는 것은, 사회가 작을 때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커지고 구성원이 다양해질수록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합의 지점이다. 폐쇄된 공동체나 동질적인 사회에서는 그것이 없어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양성과 차이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윤리 규범이 없이는 결코 안정된 공존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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