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과도기를 통과한 나의 시간
나는 1970년대 초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 가면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지었고, 냉장고조차 없는 집에서 생활했다. 초가집은 겨우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뀐 상태였으며, 전화도 교환원을 거쳐야만 통화가 가능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지만, 그 기억은 몇백 년 전 조상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한 세대 안에서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금성과 삼성이 내놓은 ‘퍼스컴(퍼스널 컴퓨터의 줄임말)’으로 베이식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집에서는 대우 IQ2000(MSX2 기종)으로 최신 코나미 게임을 하며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친구 집에서는 애플 II로 GI Joe와 Ultima 같은 게임을 했다. 캐나다로 이민 간 뒤에는 고등학교 수업에서 파스칼로 식료품점 체크아웃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영수증을 출력하는 코드까지 짜 보았다. 13학년에는 초창기 매킨토시와 애플 IIGS를 접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 눈에는 그것이 그저 장난감에 불과했다. 컴퓨터가 언젠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는 당시 어른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학 시절은 통신 기술의 진화를 체감한 시기였다. 중학교 시절, 집이 한의사였던 부잣집 친구가 로얄 살롱 자동차 뒤에 커다란 안테나를 달고 쓰던 카폰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내가, 직접 미쓰비시 다이아몬드텔 플립폰을 손에 넣었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학생 신분에 요금은 너무 비쌌고, 오래 쓰지 못한 채 해지했다. 대신 저렴한 페이저, 즉 삐삐를 구입해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숫자를 일본어 발음으로 바꿔 암호처럼 쓰기도 했는데, 88951은 はやくこい, “빨리 와라”라는 뜻이었다.
1997년 한국에 잠시 살 때는 씨티폰을 샀다. 이동 중에는 잘 터지지 않았지만,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공중전화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씨티폰으로 여유 있게 메시지를 확인할 때 느꼈던 묘한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잠시 멈췄을 때 재빨리 연결해 메시지를 확인하던 순간도 또렷이 기억난다.
일본에 건너가 NTT 도코모에서 2만 엔짜리 휴대폰을 샀지만 불행히도 일주일 만에 변기에 빠뜨려 버렸다. 결국 실속형 브랜드인 디지털 TUKA로 갈아타 오래 사용했다. 그 시절 나는 한국의 PC통신 ‘나우누리’를 일본에서도 계속 이용했는데, 일본은 시내 전화도 무제한이 아니어서 밤 11시가 되어야만 “텔레호다이”라는 정액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며 11시를 기다렸다가 모뎀을 연결했는데, 신청 즉시 적용되는 줄 알고 매일 밤 접속하다가 실제로는 다음 달부터 적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요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그 문제로 NTT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도 있다.
그때의 통신 속도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느렸다. 동영상은 엄두도 못 냈고, 이미지 파일 하나 받는 데도 밤새 모뎀을 켜 두어야 했다. 결혼식 사진 일부를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해 두었는데, 훗날 아마존에서 USB 플로피 드라이브를 사서 열어보려 했다. 화면 위에서부터 사진이 조금씩 내려오다가 얼굴이 드러날 즈음 디스크 에러가 나 결국 끝내 열지 못했다. 그 좌절감 속에서도 묘하게 그 시절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궁이와 핸들을 돌려서 교환원과 연결하는 전화를 기억하는 동시에, 퍼스컴과 MSX, IBM PC와 매킨토시, 삐삐와 씨티폰, 텔레호다이와 플로피 디스크까지 모두 직접 체험한 세대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그 모든 과도기를 거쳐왔다. 그래서 내 세대가 바로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어와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수없이 사전을 뒤적였고, 아무리 찾아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주위에 물어볼 사람조차 없어 혼자 끙끙댔던 기억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AI가 문장을 다듬어주고, 문법을 고쳐주며, 뉘앙스까지 설명해 준다. 만약 내가 지금의 10대로 돌아간다면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 중국어·스페인어·프랑스어까지도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엊그제는 AI가 엑셀 코파일럿으로 수식까지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 IT 컨설턴트로 승진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엑셀 매크로와 수식을 써서 일본 실정에 맞지 않는 미국 솔루션을 억지로라도 활용 가능하도록 도구를 만든 덕분이었다. 그 시절 밤새 머리를 쥐어짜며 VBA와 수식을 다루던 노력이 이제는 AI가 대신해 주고 있다. 앞으로 세상은 더 빠르게 진화할 것이고, 나는 이제 그것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익히고 활용하는 일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내 삶은 곧 한 사회가 겪은 급격한 변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작은 타임라인이다. 아궁이에서 인공지능까지, 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사전에서 AI까지. 짧은 세월에 문명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돌아보면, 인생이 짧다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오래 살아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