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도시락과 역사 인식의 연결 고리
일본은 겉모습과 실제 현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인들은 깔끔하고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처음 이 점을 느낀 것은 니가타에서 지인 가족의 학교 운동회에 초대받았을 때였다. 학부모들이 리본으로 장식한 치킨, 정성스럽게 꾸민 샐러드와 오니기리를 도시락으로 싸온 모습은 마치 전시품 같았다. 한국인 학부모가 일본 학교 운동회에 김밥 도시락만 싸 와서 부끄러워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다. 이런 음식은 일상의 식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서 정성과 겉치레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집이 세련되고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친구를 초대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일본에 살면서 초대받은 집은 대부분 특별한 경우였다. 니가타에서는 아버지가 문화재 장인이라 마당에 비단잉어 연못이 있는 대저택에 사는 동료, 혹은 전통 농가의 큰 집 같은 집들이었다. 그러나 도쿄에서는 거의 초대받지 못했다. 한 번은 동료가 건담 프라모델을 우리 아이에게 주겠다며 집으로 불렀는데, 남자 혼자 사는 아파트가 너무 어수선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 도쿄 생활 초기에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금하러 집집마다 다닌 적이 있는데, 현관부터 신발, 골판지 상자, 신문지가 쌓여 어지러운 집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도쿄 서민들의 현실적인 주거 모습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드러난다. 개인이 자신의 어수선한 현실을 숨기듯, 일본은 역사 속 어두운 면을 솔직히 직시하기보다는 다듬어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도 실제 생활이 아니라, 애니메이션·게임·만화처럼 정교하게 만들어낸 판타지 이미지 때문이다.
나 역시 10대, 20대 때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이런 차이를 느꼈다. 애니메이션·드라마 대사는 다 이해가 되었지만, 예능 방송에서 일본인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다. 재작년에 Apple TV Plus Pachinko 시즌2 현장에서 통역을 하면서, 일본 배우들이 대사를 실제 일상 회화처럼 조금씩 바꿔서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도 있다. 일본의 극작가들은 전통적인 각본 스타일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아, 현실 대화와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스러운 말투로 어미에 “-와”를 붙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서 20년 살면서 실제로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내의 할머니처럼 연배가 높은 분들이 간혹 쓰는 정도였고, 젊은 세대가 쓰는 경우는 농담이나 장난일 때뿐이었다.
일본인들이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리고, 대신 포장된 겉모습을 내세우려는 태도는 역사 미화와 왜곡으로도 이어진다. 일본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일본인이 그럴 리가 없다”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런 일을 실제로 하고도 모른 척하거나 외국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또한 전형적이다.
한국인들은 속내를 드러내고 본모습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하지만, 일본인들은 끝내 벽을 허물지 않고 꾸며낸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 결국 피곤한 인간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문화가 일본 사회에서 히키코모리가 많은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