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한 통이 가르쳐준 세계관

분유 브랜드 명칭에서 본 한국, 일본, 캐나다의 육아관 차이

by 쿨파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한국의 부모님 댁에 머물던 시절이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 일본에서 가져온 분유가 떨어져서 한국에서 사러 대형마트에 갔는데, 그날 진열대 앞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앱솔루트 명작」, 「임페리얼 드림 XO」…. 눈앞에 보이는 분유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거창했고, 마치 아이의 찬란한 미래를 상정해 놓은 것 같은 이름들이었다.


일본에서 아이들에게 먹이던 분유는 「はいはい」나 「すくすく」, 「ぐんぐん」처럼 한국어로 하면 “아장아장”, “쑥쑥” 같은 의태어를 상품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패키지 디자인도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에 귀여운 아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반면 한국의 「임페리얼 XO」는 금색 패키지에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디자인이었다. 같은 ‘분유’라는 제품이라도, 그 이름과 포장에는 각 나라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일본 – 지금 이 순간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분유 브랜드의 이름은 전반적으로 매우 부드럽고 정감 있다. 「はいはい(하이하이)」는 아기가 기어 다니는 소리를, 「すくすく(스쿠스쿠)」는 ‘쑥쑥 건강하게 자라라’는 부모의 마음을, 「ぐんぐん(궁궁)」은 힘차고 자연스러운 성장을 연상시킨다. 모두 현재 아이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한 이름이다.


아이의 미래를 미리 설계하거나 경쟁력을 고민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아이가 귀엽고 소중하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마케팅이다. 이런 이름들에는 일본 사회의 육아관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부모는 아이를 성공으로 이끄는 ‘설계자’가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고 지원하는 ‘조력자’이며, 아이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중심에 두는 존재다.


한국 – 미래의 성취를 투영하는 기대

반면 한국의 분유 브랜드 이름에는 ‘미래의 성취’에 대한 기대가 깊게 깔려 있다. 「앱솔루트」(절대적인), 「프리미엄」(최고급), 「명작」 같은 이름들은 마치 아이가 앞으로 큰 성과를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담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단순히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할 프로젝트’의 매니저처럼 행동하고, 아이는 그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분유조차 단순한 영양 보충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투자’의 일부로 인식된다. 마트 진열대 앞에서 느꼈던 그 묘한 무게감은 단순한 마케팅 언어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경쟁 의식이 압축된 상징이었던 셈이다.


북미 – 과학적으로 설계된 성장

캐나다에 재이주했을 때는 아이들이 이미 분유를 졸업한 뒤라 직접 구입할 일은 없었지만, 마트에서 본 분유 제품은 또 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분유를 칭하는 명칭 그 자체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처럼 “분유” 혹은 “가루 우유”라고 하지 않고, “Baby Formula(베이비 포뮬라)”라고 부른다. ‘포뮬라(formula)’는 본래 화학식이나 조성물을 뜻하는 말이다. 이 단어에는 분유를 ‘과학적으로 설계된 영양 조합’으로 인식하는 북미식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브랜드 이름 역시 기능과 성분, 과학적 효과를 강조한다. 「Similac」(모유와 유사한), 「Enfamil」(영아용 포뮬라), 「Nutramigen」(영양+면역) 등 이름만 보아도 영양학적 접근이 전면에 드러난다. 제품 패키지나 광고에서도 DHA 함량, 칼슘 수치, 임상 데이터 등 과학적 정보를 앞세운다.


이런 접근 방식에는 북미 특유의 육아관이 녹아 있다. 부모는 아이의 성장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는 존재가 아니라, 영양과 발달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사람이다. 육아는 감성보다 과학, 본능보다 분석의 영역이라는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분유 이름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디테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단어 하나에도 각 사회가 아이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부모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보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은 ‘지금 이 순간의 아이’를 사랑하고, 한국은 ‘미래의 성공’을 꿈꾸며, 북미는 ‘과학적으로 설계된 성장’을 추구한다.


진열대 앞에서 느꼈던 그 작은 문화 충격은 사회가 인간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은 언어와 브랜드, 부모의 선택, 분유 이름 속에서도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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