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지식의 자신감과 만들어진 ‘특별한 일본'

by 쿨파스

예전에 미국 회사의 일본 지사에 있을 때, 나와 친하게 지내던 미국인 상사가 있었다. 그는 일본에 자주 출장 오고 일본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었다. 일본에 그렇게 자주 오면서도 일본어는 한마디도 못했고, 일본 사회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그는 일본 지사 직원들에게 줄 선물이라며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와인을 몇 병 들고 왔다. 그리고는 직원들 앞에서 “이건 아주 특별한 시즌 한정 와인이야. 일본 사람들도 이런 걸 좋아할 거야.”라며 자랑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보졸레 누보는 일본에서 이미 매년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가득 채우는 흔한 계절 상품이라는 것을. 일본 사람들에게 그것은 ‘특별한 프랑스의 문화’가 아니라, 오래전에 일상 속 일부가 되어버린 평범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사에서 “일본 전문가”로 불렸다. 일본어도 못하고 문화적 맥락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 있게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은 영어권 문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지식의 깊이와 관계없이 자신 있게 말하는 것 자체가 능력으로 여겨지는 문화다. 어떤 주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어도, 확신 있는 어조로 말하면 사람들은 그를 전문가로 믿는다. 오히려 “잘 모르겠다”거나 “확실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능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틀릴 것을 알면서도 단정적으로 말한다. “fake it till you make it(일단 아는 척부터 하라)”라는 말이 일종의 처세술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물론 영어권에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그런 사람들조차 종종 자신의 지식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자신감 있게 말해야 한다고 느끼는 분위기다. 반대로 동양권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지식이 많아도 겸손을 잃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태도가 존중받는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바로 “얕은 지식의 자신감”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영어권 매체에서 일본 문화를 다룬 글을 보면, 얕은 이해를 가지고도 전문가인 듯 설명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호시이모(干し芋)’는 단순히 말린 고구마일 뿐인데, 이를 “전통적인 일본의 건강 간식”처럼 과장한다.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는 단순히 ‘서비스’나 ‘환대’에 불과하지만, 영어권에서는 거의 번역 불가능한 심오한 철학인 것처럼 포장된다. 영어권 레시피를 보면 “우마미(umami)”라는 말을 과도하게 사용하는데, 이것도 뭔가 “있어 보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재료에 영어 사용자들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일본어를 그대로 써 넣으면서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레시피는 핵심적인 과정이 엉터리인 경우가 너무 많다. 일본 된장국인 미소시루를 만들면서 다시를 끓이지 않는다거나, 라멘을 만들면서 면은 우동이나 소바를 써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황당한 얘기들이 너무나 자신만만한 어조로 제시된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들 자신이 이러한 과장된 이미지를 깨뜨리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엉터리 레시피는 오히려 코미디 소재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일본을 로맨틱하게 꾸미는 시선은 적극적으로 즐기고 활용한다. 도쿄 올림픽에서나 일본 자동차 기업들의 마케팅에서 “오모테나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국인들이 ‘일본적’이라는 환상에 열광한다면, 일본은 그 환상을 국가 브랜드와 상품 전략으로 삼는다. “오모테나시”는 사실 매뉴얼화된 서비스 훈련에 불과하지만, 외부의 시선 속에서는 ‘일본의 정신’으로 포장된다.


결국 이것은 일방적인 구조가 아니다. 영어권 사회는 ‘특별한 일본’을 찾고, 일본은 그 ‘특별함’을 만들어 보여준다. 얕은 이해와 자기만족이 서로 맞물려 현실과 거리가 먼 판타지를 만들어내고, 그 판타지는 현실보다 훨씬 강력하게 소비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본’은 실제 일본이 아니라, 외부의 욕망과 내부의 전략이 공모한 허상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본인의 태도가 단지 외국인의 이해를 흐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외국인이 일본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일본 스스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외부의 시선에 맞춰 만들어낸 이미지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면서, 일본은 진짜 자화상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문화적 오해의 문제를 넘어 경제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B2C(소비자 대상) 상품이 세계 시장에서 잇달아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일본이 여전히 “특별한 일본”이라는 판타지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부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이미지 만들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소비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시장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정한 지식과 문화 이해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아는 체를 하는 것보다 배우려는 겸손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영어권 사회에서 “자신감 있는 말”이 “정확한 말”보다 더 큰 힘을 가지는 한, 얕은 지식은 언제까지나 진짜처럼 포장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 포장된 환상을, 마치 자기 얼굴이라도 되는 듯이 계속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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