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우리는 흔히 그것이 감정이나 성격, 혹은 서로의 인간적인 궁합에서 비롯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그것이 역할, 그리고 때로는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 내가 맡고 있던 IT 솔루션이 독일 회사로 매각되고, 내가 일본 지사를 설립해 지사장이 되었을 때였다. 부하 직원을 둬 본 적도 없던 내가 하루아침에 지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설렘보다 불안이 먼저 앞섰다. 출세했다는 기쁨보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리고 직원들을 몇 명 두고 난 뒤부터는 이전과 달리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생겼다. 이전에는 동료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사적으로 술자리에 부르지 않거나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에서, 역할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비슷한 감정은 캐나다에서 대기업 통역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찾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업계에서, 그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동시통역을 맡게 되자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내가 통역을 맡은 회의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수천 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나 본부장급 인사들이었다. 처음엔 그들의 지위에 압도되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대화를 나누면 그들도 결국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문득 ‘이 사람은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쳐갈 때마다, 다시금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을 느끼곤 했다.
아마 대통령이라도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어릴 적 친구처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것이다. 그러나 공식 석상에서 다시 마주치면, 우리는 곧 대통령과 소시민이라는 전혀 다른 위치에서 서 있게 된다. 나도 과거 일본 정부 프로젝트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사장과 거의 둘이서 움직이며 정부 인사와 협의하고 세부 내용을 설명했다. 하지만 2단계로 넘어가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조직 구조가 갖추어지자, 나는 한 실무자로 물러났고, 사장은 다시 멀리 있는 ‘결정권자’의 위치로 올라섰다. 같은 사람이었지만, 역할이 바뀌자 관계의 거리도 달라졌다.
반대로, 역할이 달라졌는데도 관계가 전혀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 처음 IT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보다 네 살 많은 경리 담당 여직원이 있었는데, 나는 신입이라 당연히 존댓말을 썼고 그녀는 반말을 했다. 그런데 7년 뒤 내가 새로 설립된 회사의 대표가 되어 그녀를 외부에서 파견받아 경리 업무를 맡겼을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사장이 되었고 그녀는 나의 부하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존댓말을 썼고 그녀는 반말을 썼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미 만들어진 관계를 억지로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역할보다,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를 더 중요하게 여긴 셈이다.
관계가 달라지는 데에는 언어가 개입할 때도 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와 그의 가족을 만날 때 나는 처음에 일본어를 잘 못해 영어로 대화했다. 자연스럽게 친구의 형제들과도 영어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일본어가 능숙해진 뒤에도 이상하게 그들 앞에서는 일본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일본어를 쓰면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을 써야 할지 고민이 생겼고, 그것이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반면 영어로 말하면 그런 고민이 없으니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편안했다. 언어 하나가 관계의 성격을 새롭게 정의해 버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인간관계란 결코 단순한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할이 달라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책임과 권한의 무게가 거리를 만든다. 때로는 그 벽이 아무리 높아도 과거의 시간과 기억이 관계를 붙잡아 두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는 그런 관계를 다시 쓰기도, 그대로 유지시키기도 한다.
결국 인간관계란, 역할이 만드는 거리감, 시간이 지켜낸 기억, 그리고 언어가 규정하는 틀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낸 결과다. 이 미묘한 차이와 거리를 읽어내는 일 자체를 피곤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타입이라 적극적으로 사교적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고,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