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往生際が悪い’ 일본 – 현실을 끝까지 외면하는 나라

상처받기 싫어서 현실을 외면하는가

by 쿨파스

일본에는 「往生際が悪い(오조기와가 와루이)」라는 말이 있다. 극락왕생이라고 할 때의 “왕생”할 직전, 즉 ‘죽음을 앞두고도 체념하지 못하고 버틴다’는 뜻이지만, 일상에서는 ‘이미 상황이 끝났는데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질질 끄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 표현은 일본 사회의 깊은 성격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짚어낸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 산업, 문화에는 언제나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버티는’ 습성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다. 이미 1944년 이후 일본의 패배는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해군은 궤멸했고, 주요 도시들은 폭격으로 궤멸 상태였으며 산업 기반도 붕괴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와 지도층은 끝까지 “본토 결전”을 외치며 항복을 거부했다. 원자폭탄 투하 직전까지도 일부 지도자는 “조금만 더 버티면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파괴됐고, 소련이 참전하여 결국 일본은 아무 조건도 붙이지 못한 채 항복했다.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더 일찍 현실을 인정했다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뭔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현실도피적 생각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전쟁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의 전후 산업과 경제에서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버블 경제 때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될 때 “일본 경제는 다르다”며 경고를 무시했다. 결과는 ‘잃어버린 30년’이었다. 금융계는 부실채권을 숨기고 좀비기업을 지원하며 위기를 늦추려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한때 세계를 제패하던 가전제품 산업은 삼성과 LG, 애플이 성장하자 “그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저소득층을 노릴 뿐이다”, “값싸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품질 상품을 만들 뿐이다”, “일본은 선진국 고소득층을 노린 고부가가치 상품에 주력하면 된다”며 현실을 외면했다. 결국 일본 브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붕괴된 다음에야 삼성이라는 기업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일본의 실패에는 공통점이 있다.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우리는 품질로 승부한다”, “우리는 다르다”는 자기 위안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이다. “상처받기 싫다”는 유아적인 현실 도피 욕구가 우선한다는 말이다. 이 사고방식은 문화 산업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K-팝을 비롯한 K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자 일본 언론은 “그건 한국 정부 지원 덕분”이라고 폄하했다. 마치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처럼 정부가 끼어든 “반칙” 덕분에 한국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갔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발언을 언론과 유명인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상처받은 기분을 그걸로 달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훨씬 더 큰 예산으로 ‘쿨 재팬’을 추진했지만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애초에 정부 지원으로 어떻게 오스카상을 받고 빌보드 1위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한국 정부가 지원했다는 얘기도 “일본도 더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보다 “정부 지원 효과에 불과하니까 한국의 성공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라고 폄하하는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참고로 일본은 ‘필살기(必殺技)’라는 말을 유난히 좋아한다. 단순히 만화나 게임 속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는 구조 개혁이나 꾸준한 전략보다는 ‘한 방 역전’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를 장기적·복합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궁극의 기술 하나”, “비장의 카드 하나”로 상황이 뒤집힐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하는 것이다. 2차대전 말기에는 세계 최대급 전함인 야마토가 이 필살기였다. 이 사고는 앞서 말한 ‘오조기와가 와루이’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현실을 미리 인정하고 조금씩 바꾸는 대신,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한 방을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기차(EV)와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급속히 전환하는 동안, 일본 제조업체들은 하이브리드(HEV) 중심 전략을 고수하며 “EV는 시기상조”라 주장했다. 그 결과 일본 완성차 브랜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고, 테슬라·BYD·현대 등 경쟁사는 이미 수년 앞서 나갔다. 이 상황에서 일본 언론과 업계가 내세운 필살기가 전고체 배터리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분명히 잠재력이 큰 차세대 기술이다. 그러나 일본이 범하는 가장 큰 착각은 자기들만 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CATL, QuantumScape 등 전 세계 모든 주요 기업이 이미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어떤 회사는 일본보다 빠르게 시제품을 내놓고, 상용화 계획도 더 앞서 있다. 결국 전고체 배터리는 일본만의 ‘비장의 카드’가 아니라 모두가 노리는 ‘공용 목표’일 뿐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전고체 한 방으로 게임을 뒤집을 것”이라는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착각에 그치지 않는다. 필살기 사고는 전략적 판단을 왜곡한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전고체가 나오면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라는 믿음에 갇혀 지금 필요한 대응을 미루고 있다. 충전 인프라, 배터리 공급망,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현재 시장 경쟁의 핵심에 대한 투자가 뒤처진다. 글로벌 파트너십과 생태계 전략 대신 기술 한 방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이것이 필살기 사고의 가장 큰 폐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언젠가 올지도 모를 한 방’에 미래를 맡겨버리는 것이다.


“한 방 역전”이라는 생각은 일본 사회의 오랜 습성이다. 전쟁에서도, 경제 위기에서도, 산업 전략에서도 일본은 늘 끝까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필살기”라는 말에 기대며 불편한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그러나 더 이상 세상은 그런 ‘한 방’을 허락하지 않는다. 전고체 배터리든, 새로운 기술이든, 그것만으로는 일본의 뒤처진 경쟁력을 되살릴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 장기 전략, 그리고 꾸준한 변화의 축적이다.


‘오조기와가 와루이’라는 말은 일본의 과거를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지금 일본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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