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에서 도쿄까지 여섯 시간

일본의 지리 환경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나

by 쿨파스

일본의 역사는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체계를 유지해 왔지만, 일본은 달랐다. 헤이안 시대에 천황을 중심으로 중국식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적 국가를 지향했으나, 그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무사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일본은 한 번도 진정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지리적 한계가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일본은 좁고 길게 늘어진 섬나라로 산이 많고 평지가 적어 교통이 불편했다. 자연히 중앙의 통제가 지방에 미치기 어려웠고, 권력은 지역 단위의 무사 세력으로 분산되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살아 보면, 오늘날에도 이러한 지형적 특성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부산이든 광주든 강릉이든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반면 일본에서는 조금만 멀어져도 비행기를 타야 하거나, 교통비와 도로 사정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다. 일본의 고속도로는 좁고 통행료가 비싸며, 차를 몰고 가도 기름값과 요금을 합치면 여럿이 나누지 않는 이상 신칸센과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나는 일본 니가타현에 3년을 살았는데, 바로 옆 동네인 나가노나 후쿠시마를 가는 일조차 부담이 되었다. 차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한국의 고속도로 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 수많은 루트가 서로 얽혀 있어 한 노선이 막히면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이동의 자유도가 높다. 반면 일본은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단조롭다. 두 도시 사이에는 일본 알프스라 불리는 험준한 산맥과 후지산이 가로막고 있어, 예로부터 사람들이 이용해 온 길은 해안선을 따라가는 도카이도(東海道)와 산맥을 북쪽으로 우회하는 나카센도(中山道) 두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나카센도는 현대의 고속도로 기준으로도 거리가 훨씬 길고 구불구불해,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일본의 동서 간 교통은 지금도 도카이도 축 하나에 의존하고 있으며, 사고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제서야 나카센도(주오 고속도로)가 우회로로 쓰일 뿐이다.


그 도카이도 축을 따라 놓인 도메이(東名) 고속도로는 일본의 대동맥이라 불리지만, 한국의 고속도로에 비하면 차선이 훨씬 적어 만성적인 교통 체증에 시달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2 도메이 고속도로’가 새로 건설되었지만, 교통량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일본 알프스 북쪽을 돌아가는 주오(中央) 고속도로는 대부분 구간이 왕복 2차선에 불과하며, 터널과 교량이 연속으로 이어져 항상 좁고 답답했다. 나 역시 일본에서 운전할 때 이 도로를 여러 번 이용했지만, 긴 터널과 급경사 구간이 많아 늘 긴장한 채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니가타에 살던 시절, 나는 도쿄에서 살던 아내(결혼 전)를 만나기 위해 자주 왕복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때라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차박을 하고,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고속도로 대신 일반 국도를 이용했다. 니가타에서 도쿄까지 신칸센으로는 두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지만, 일반도로로 가면 보통 밤 12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6시쯤 도착했으니 꼬박 여섯 시간이 걸렸다. 니가타 평야를 달리다 보면 점점 산세가 험해지고, 니가타현과 군마현의 경계에 위치한 미쿠니 토게(三国峠)라는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한국의 대관령이나 한계령 같은 구간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간에츠(関越) 터널’이라는 10킬로미터 길이의 대형 터널로 통과할 수 있다. 눈이 심하게 오거나 시간을 절약하고 싶을 때만 그 구간을 고속도로로 이용했지만, 그조차 만만치 않은 통행료였다. 미쿠니 토게를 넘는 길은 깊은 산속이라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같이 어두웠는데, 한참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거대한 스키 리조트 단지가 나타난다. 밤하늘에 휘황찬란한 조명이 반짝이는 프린스 호텔 리조트였다. 버블 경제의 잔재를 상징하듯, 산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그 건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갯길이나 터널을 빠져나오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니가타에서는 늘 흐리고 눈이 내렸지만, 그 터널을 지나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맑은 하늘과 마른 도로가 펼쳐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서 “터널을 빠져나오자, 거기는 설국이었다”는 구절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후와 풍경, 심지어 공기의 냄새까지 달라졌다. 도쿄가 가까워질수록 교통 체증은 심해졌다. 특히 사이타마 구간에서는 거의 정체 수준이어서, 나는 늘 요노 인터체인지에서 수도 고속도로로 진입하곤 했다. 당시 수도 고속은 정액 요금 700엔이었다.


수도 고속도로의 운전은 또 하나의 모험이었다. 이름은 ‘고속도로’지만 실제로는 커브가 많고 시야가 좁은 고가도로의 연속이었다. 빌딩 숲 사이를 가로지르며 높고 좁은 차로 위를 달릴 때면 마치 도시의 틈새를 비집고 가는 느낌이었다. 도쿄의 수도고속도로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급히 건설된 것이다. 당시 땅이 부족하자 도심의 도로를 확장하는 대신 황궁을 감싸는 해자와 강 위를 따라 고가도로를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노선이 구불구불하고 곡선과 경사가 잦다. 이 도로는 일본의 경제성장기와 도시집중의 상징이자, 동시에 그 부작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이름은 ‘고속도로’이지만, 대부분 구간의 제한속도는 시속 60킬로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80킬로 전후로 달린다.


토론토 다운타운을 달리는 가디너 익스프레스웨이와 남북을 관통하는 돈 밸리 파크웨이는 도쿄의 수도고속도로를 떠올리게 한다. 다운타운의 빌딩 숲 사이를 지날 때는 도쿄 히가시이케부쿠로의 풍경이 겹쳐지고, 돈 밸리 파크웨이를 북상할 때는 이이다바시와 고코쿠지를 지나 사이타마 방면으로 향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혀 다른 대륙이지만, 하이웨이 400을 타고 온타리오 북부로 향할 때는 간에츠 고속도로를 따라 니가타로 향하던 감각이 문득 되살아난다.


지난 9월, 친구와 함께 일본에 잠시 다녀왔을 때 도쿄에서 지금은 규제가 풀린 렌탈 전동 스쿠터를 타고 옛 사무실 앞까지 가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길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일본을 떠난 지 8년이 가까워지자, 그때의 기억도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아직 노후를 어디에서 보낼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다.

그때와 지금의 거리만큼이나, 인생의 길도 언젠가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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