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은 왜 세계를 놓쳤는가
글로벌 상품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데이터풀 기업에 몸담고 있을 당시, 나는 일본의 식품 및 소비재 제조업체, 특히 중소기업들로부터 종종 “우리 제품을 외국에 팔 수 있을까?”라는 문의를 받곤 했다. 그들은 우리 회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사 제품을 세계 시장에 노출시키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현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접근의 공통된 배경에는 일본 특유의 “품질만 좋으면 팔린다”는 신앙이 존재한다. 이 믿음은 단순한 자신감을 넘어 거의 종교적 신념처럼 뿌리박혀 있다. 과거 일본 제조업이 세계를 석권하던 시절의 성공 경험이 여전히 일본 사회 전반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더 이상 “좋은 품질이면 팔린다”는 단순한 구조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품질은 기본일 뿐이며,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맥락으로 파느냐가 제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실제로 일본의 가전 업계가 삼성이나 LG 같은 한국 기업들에게 밀리기 시작했을 때, 일본 사회 내에서는 이런 해석이 많았다. “한국 제품은 싸고 품질이 그럭저럭이라 개발도상국의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고품질 프리미엄 제품으로 선진국의 부유층을 노려야 한다.” 그러나 정작 세계 시장에서는 '좋은 품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 자체가 기술이며 경쟁력이었다. 그리고 글로벌 마케팅, 브랜딩, 유통 전략 측면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훨씬 공격적이고 유연했다. 일본은 이미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다르다”는 자존심과 자기위안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가전이나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품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편의점에서는 매달 새로운 한정판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 중 일부가 병행 수출을 통해 캐나다나 미국의 아시아계 마트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애초에 해외 판매를 전제로 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성분표시나 알레르기 정보, 유통기한 등의 라벨링이 현지 규제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입업자들이 별도로 스티커를 제작해 부착하기는 하지만, 모든 제품에 철저히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간혹 스티커조차 없이 진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명백한 법률 위반이자 소비자 안전의 위험 요소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병행 수출로 인해 일본 제조사조차 자사 제품이 해외에서 팔리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게 되더라도 “우리는 해외 유통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다. 실제로 내가 일본에서 일하던 당시, 일본 국내 제품 데이터베이스를 외국 기업에 공유해 글로벌 유통망과 연계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많은 식품 메이커들은 “책임을 질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일본 사회 전반의 폐쇄성과 리스크 회피 문화가 글로벌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이 어떤 기회를 놓치게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일본에는 예전부터 ‘리포비탄D’ 같은 자양강장 음료가 존재했다. 피로 회복, 자양강장이라는 컨셉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지만, 그 마케팅은 철저히 일본 내 시장, 그것도 중장년층 남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문법에 한정되어 있었다. 반면,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된 ‘레드불’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기능성 음료였지만, 젊음, 에너지, 스포츠, 파티 문화와 연결되는 글로벌한 컨셉과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다. 같은 카테고리의 음료였지만,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팔았는지가 그 결과를 갈랐다. 일본식 사고방식은 이처럼 ‘좋은 물건’을 ‘시장에서 통할 방식’으로 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일본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이면 팔린다”는 과거의 신화를 내려놓아야 한다. 제품 자체의 품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획, 브랜딩, 타겟팅, 포지셔닝, 유통 전략 등 복합적 요소들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시장을 보는 용기다.
국경을 넘는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것은 품질 그 자체보다 정보, 전략, 그리고 시장에 대한 열린 태도다. 스스로 만든 좁은 틀에 갇혀서는,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도 세계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