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전환점, 그리고 지금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일본은 주로 역사 속의 침략 국가였다. 임진왜란, 한일병합, 일제강점기—일본은 한국에 많은 고통을 준 나라로 설명되었고,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정도의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사주신 동아대백과사전을 통해 조금 다른 인상을 받게 되었다. 일본 편에는 도쿄의 긴자 거리, 이케부쿠로 선샤인 빌딩, 교토의 오래된 다리, 그리고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바위섬 위에 세워진 신사 같은 풍경 사진이 컬러로 실려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처음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추상적인 나라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흥미로운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은 더 구체화됐다. 일본과 무역을 하던 친구 아버지 덕분에 일본 장난감과 컴퓨터 게임을 접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MSX매거진』, 『MSX팬』 같은 일본 게임 잡지를 돌려 보면서 가타카나 표기와 일본식 표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게임 타이틀을 읽다 보면 단어의 발음과 구조를 유추하게 되었고, 그게 언어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친구에게서 빌린 MSX판 '그라디우스(Gradius)' 게임 팩을 할아버지께 보여드리며, "이거 뭐라고 쓰여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그라데이우스"라고 읽으셨다. 나는 순간 '디'가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나? 하고 헷갈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 기억은 꽤 오래 남았다. 그리고 훗날 일본 니가타에 살게 되었을 때, 버스 운전기사가 정류장을 안내하며 'シティ(시티)'를 'してー(시테ー)'라고 발음하는 것을 들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세대에 따라 작은 'ィ'가 들어가는 발음을 생략하거나 다르게 읽는 경우가 있다는 것. 어릴 적 할아버지의 발음도 그런 차이 중 하나였던 것이다.
정식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일본어를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의외로 그날 저녁에 교재와 일본어 사전을 사 오셨다. 그걸 계기로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독학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캐나다로 이민 온 이후, 영어는 초기에 큰 장벽이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일본어는 내가 비교적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외국어였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보며 친구들에게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었고, 일본어가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일본어 관련 과목을 수강했고, JLPT 1급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회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일본어로 말문이 트인 건 대학 3학년 무렵이었다. 일본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재일교포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일본어만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이 말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반복되는 대화를 통해 점점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 3학년이었던 1995년, 나는 처음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직접 가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최한 일본어 성적 우수자 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되었고, 이를 통해 전국의 일본어 전공자 몇 명과 함께 단기 연수 형식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이 연수 직후에는 JLPT 1급에도 합격했다. 이 시기는 나에게 일본어 학습이 이론과 시험에서 실제 체험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 연수는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최한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캐나다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선발되어 일본에 초대되었다. 하지만 모집 요건 중 하나가 '최근 일본 체류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가자 중에는 실제 일본어 회화 실력이 그리 높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연수 기간 중 참가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다소 의외였다. 공식 명목은 '일본어 성적 우수자 연수'였지만, 참가자들 간의 공통어는 대부분 '영어'였다. 누구나 일본어는 공부했지만,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거나 농담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고, 결국 자연스럽게 영어가 소통의 기본 언어가 되었다.
당시에는 나도 일본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 상황을 보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영어의 위상을 실감하게 되었다. 일본어로는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제한되지만, 영어로는 좀 더 풍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주도권을 잡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심이 옮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논의의 흐름을 결정하는 도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 체험은 내게 일본어 학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단순히 시험을 통과하거나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언어를 익힌다는 것이 그 언어가 쓰이는 세계의 구조까지 함께 이해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한편, 그때는 엔화가 급등하던 시기였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2,000캐나다 달러가 환전 후 불과 12만 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출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물가의 차이와 환율의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아키하바라에 들러, 당시 일본에서도 막 출시되어 품귀 현상을 겪던 플레이스테이션 1세대 기기를 4만 엔에 구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큰 지출이었지만, 이왕 일본에 왔으니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실물로 처음 접한 감각, 거리의 느낌, 전자제품 매장의 분위기, 그리고 혼자서 도쿄 거리를 헤매던 기억들이 지금도 또렷하다.
결과적으로, 언어 능력은 내가 성장하면서 마주한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기회였다. 대학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일본어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이었고, 졸업 후 JET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에 갈 수 있었던 것, 도쿄에서 IT업계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지금 통역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모두 일본어와 관련이 있다.
언어는 처음엔 단순한 흥미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내 삶의 여러 단계에서 중요한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기반이 되었다. 나는 어떤 자격증이나 학위보다도, 일본어라는 언어를 배운 것이 지금까지 가장 일관되게 내 삶을 지탱해준 기술이자 자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