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역전과 존엄의 회복
누군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는 건 단순한 응징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어쩌면 그 사람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감정의 발현이다. 사죄의 요구는 정의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존엄의 균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심리적 요청이다.
어릴 적 나를 괴롭혔던 누군가가 있다. 그 사람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면, 속에서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최소한 사과는 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마음이 따라온다. 사과는 내 상처를 치유할 기회이며, 동시에 상대에게 최소한의 죄책감을 환기시키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지금 불쌍하게 살고 있고, 병들었고, 삶이 무너져 있다면 어떨까? 그때는 오히려 말없이 돌아서게 된다. 사과조차 받아낼 필요가 없어진다. 이미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자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 간 관계도 다르지 않다. 한국이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강하게 요구했던 시기는, 단순히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당신이 나보다 강했고, 나는 피해자였지만, 지금이라도 나의 고통을 인정해 달라”는 존엄의 회복 욕구가 있었다. 우리는 일본의 사과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제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는 판이 바뀌었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일본에게 인정받아야만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1인당 GDP는 일본을 추월했고, 반도체·배터리·콘텐츠 산업 등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류와 같은 문화 자산은 오히려 일본의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역전은 사죄 요구의 심리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더 이상 일본의 인정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사죄도 필수가 아니게 된 것이다. 과거의 괴롭힘을 준 상대가 이제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듯,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일본은 한국에게 예전만큼 위협적인 국가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한다. 한때 일본에서는 한국의 부상을 두려워한 듯 혐한(嫌韓) 정서가 극단적으로 창궐했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에서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의 시장을 빼앗으면서 일본 보수층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안겨주었고, 그 결과 한국은‘불편한 위협’으로서 혐오의 타깃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미 추월은 이루어졌고, 한국은 이제 “앞서가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혐한은 효과적인 심리적 방어기제가 되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려 해도 한국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사죄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듯, 혐오도 더 이상 지속할 힘을 잃은 것이다. 한국은 일본에게서 사과를 요구함으로써 우리의 존엄을 회복하고자 했지만, 어느새 그 사과 없이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는 점이다. 사죄 요구의 멈춤은 곧 우리의 감정이 치유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나는 어릴 적 일본의 잡지와 만화, 드라마를 보며 한국이라는 이름이 단 한 줄이라도 등장하길 기다렸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 한 줄의 언급에도 존재가 승인받은 듯한 감정을 느꼈다.
한국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나라처럼 취급되었고, 그래서 ‘사죄’라는 단어에는 단지 잘못을 바로잡는 의미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가 스며 있었던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들이 K-드라마 속에서 자기 나라 음식이나 언어, 사람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옛날의 나를 본다. 한국은 이제 그런 감정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무시당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나라로서, 이제는 다른 이들의 존재를 먼저 발견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선 것이다.
일본에 사과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게 된 건, 더 이상 그들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 일부는, 과거 일본이 그랬듯 중국과 이민자를 향한 혐오와 조롱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낸다. 존엄을 회복한 사회가 타인의 존엄을 짓밟기 시작할 때, 그것은 성장도 자립도 아닌 그저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