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의도적으로 지워온 방식
어릴 때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서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국 스스로는 임진왜란과 6·25 전쟁 같은 사건을 중대한 역사의 분기점으로 강조했지만, 일본이나 중국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별것 아닌 일일 것이라는 막연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일본에 간 이후 어린이용 일본 역사 만화 시리즈를 찾아보니 그 느낌은 더 강해졌다. 임진왜란 같은 거대한 사건조차 한 페이지도 아닌 한 컷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배들이 바다에 떠 있는 장면과 “히데요시가 조선에 출병했으나 사망으로 인해 실패했다” 정도의 간단한 설명. 이것이 내가 접한 일본의 ‘공기화된 한국’이었다.
일본어를 배울 때 마주한 일본 만화와 게임들도 마찬가지였다. 란마 1/2처럼 중국을 너무 당연하게 등장시키는 작품들이 있었고, 요리 만화들도 중국 요리를 자연스럽게 소개하지만 한국 요리는 극히 드물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에는 춘리와 페이롱 같은 중국 캐릭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한국 캐릭터는 없었다. 오히려 아랑전설 2에서 김갑환이 등장했을 때 “SNK 사장이 재일교포인가?”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만큼 80~90년대 일본 대중문화 속에서 한국은 없는 나라, 공기 같은 나라였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라오스나 캄보디아가 그러하듯, 일본에게도 한국은 단지 관심 없는 작은 나라일 뿐이겠지”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그 비교는 잘못되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한국과 지리·역사적 접점이 거의 없지만, 일본에게 있어서 한반도는 전혀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의 정체성 형성에서 한국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을 공기 취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구조적 “한국 축소” 전략의 결과였다. 일본의 정체성은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이웃은 두 나라뿐이었고, 그중 중국은 너무 크고 오래된 문명이라 대등한 경쟁 상대로 삼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이 비교의 기준점이 되었고, “중국에는 못 미치지만 적어도 조선보다는 위”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일본의 정체성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 질서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내면화되었고, 역사 교육과 대중문화, 언론 보도까지 전 영역에서 작동했다.
문제는 이 정체성이 현실과 충돌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한국이 경제·반도체·자동차·대중문화 등에서 세계적 성과를 내자 일본 우익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국이 일본을 앞설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평생 유지해 온 “한국은 하위 국가”라는 축이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집요하게 한국을 “별볼일 없는 나라”로 보이게 만드는 프레임이 강화되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되었을 때 나는 한일 관계가 성숙하고 일본이 한국을 대등한 이웃으로 대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국이 일본 사회에 본격적으로 인식되자 무시는 조롱과 혐오로 바뀌었다. 일본은 처음으로 한국의 존재감을 직면해야 했고, 그 순간 오히려 한국에 대한 반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 축소 프레임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 곳은 대중문화와 정보 환경이었다. 일본의 TV와 신문은 한국의 성취를 거의 다루지 않았고, 다루더라도 축소하거나 왜곡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는 여전히 한국을 등장시키지 않았으며, 역사 교과서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수행한 결정적 역할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6·25전쟁이 일본 경제 재건의 직접적 계기였다는 사실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한반도가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동아시아사의 중요한 부분도 마찬가지로 삭제되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스스로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전혀 달랐다. 임진왜란은 세계사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의 국제전쟁이었고, 조선의 저항이 없었다면 일본군은 명나라의 심장인 북경까지 접근했을 가능성이 컸다. 고려와 조선은 몽골, 여진,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전략적 핵심 지역이었고, 한반도는 동아시아 지정학의 중심지였다. 6·25전쟁은 일본 산업 재건의 결정적 기회였으며, 일본이 어떤 의미에서 전후 경제 기적을 이루는 출발점이었다.
또한 일본이 영구적으로 통치한 식민지는 대만과 한반도뿐이었으며, 한반도는 일본이 역사상 유일하게 ‘하나의 국가 전체’를 식민지로 삼은 사례였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도 한반도는 큰 변수였다. 중국 전체가 이민족에게 정복된 두 번의 사례—원나라와 청나라—모두 한반도를 먼저 장악한 세력이었다. 명나라의 쇠퇴 역시 임진왜란에 대한 대규모 파병이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니 분명해졌다. 한국이 작고 중요하지 않아서 공기 취급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의도적으로 한국을 지워온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을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일본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한국을 지우면 일본은 편안했고, 한국이 존재감을 드러낼수록 일본 우익은 불편해졌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는 한국을 하위 존재로 유지하려는 세력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이미 그 프레임을 넘어서고 있다. 인터넷과 SNS 시대에는 정보를 가릴 수 없다. 한국의 문화적·경제적 성취는 더 이상 지워질 수 없고, 일본이 수십 년간 구축해 온 “한국 축소의 벽”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 공기가 아니었고, 다만 공기처럼 취급당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