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의미가 없었던 ESL과정 추억
캐나다에 이민 온 초기에 나를 비롯한 많은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은 자동으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제2언어로서의 영어) 과정에 편입되었다. 이민의 나라 캐나다, 그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도시 중 하나인 토론토에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워낙 많았기에 거의 모든 학교에 ESL 과정이 존재했다.
참고로 2018년에 캐나다로 돌아왔을 때 초등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편입된 과정은 ESL이 아니라 ELL(English Language Learner)이라고 불렸다. 영어가 제2언어가 아니라 제3언어인 학생들도 많아진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이름인가 싶었지만, 막상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예전과 똑같이 ESL이라는 용어가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민 첫해, 토론토 동쪽 스카보로의 한 고등학교 10학년에 편입되었고 ESL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같은 반에는 스리랑카,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당시에는 아직 유고슬라비아가 존재했다) 출신의 학생들이 있었고, 수업 도중 남미에서 다시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계 2세 학생도 합류했다. 이 지역은 중국계(당시 대부분 홍콩계)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다른 반에 친하게 지내던 홍콩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 더 높은 등급의 클래스에 있었다.
우리 반을 맡은 ESL 교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백인 여성으로 매우 자상한 분이었지만, 솔직히 수업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기초적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친 나에게 수업은 “주어가 3인칭이면 동사에 s를 붙인다” 같은 수준이었다. I eat이지만 he가 되면 eats가 된다는 바로 그 내용. 아무리 회화가 서툴렀다고 해도 이 정도 기초 문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더 황당했던 점은 그 설명이 영어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이 말하는 영어를 내가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문법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이민자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구나.”
ESL은 영어가 전혀 안 되는 학생과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을 한 교실에 넣어두었다. 같은 반에 있던 스리랑카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Yes”, 좌우로 흔드는 것이 “No”라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나 같은 1.5세대에게 ESL은 너무 쉬웠고, 성적은 항상 A였지만 실제 실력 향상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는 수업일 뿐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찾아왔다. 몇 년간 ESL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일반 영어 수업(ENG)으로 편입되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떨어졌다. ESL에서는 성적도 좋았고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여겨졌지만, ENG 첫 주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수업 내용은 갑자기 소설 분석, 문학적 상징과 은유, 비판적 읽기, 셰익스피어 해석 같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갔다. ESL에서 배운 기초 영어와 ENG에서 요구하는 고급 읽기·쓰기 사이에는 어떤 연결 고리도 없었다. 마치 수영 초급반에서 발차기를 배우다가 갑자기 깊은 바다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 전환을 견디지 못하고 절벽에서 추락하듯 떨어지는 학생들은 정말 많았다.
나 역시 버티기 위해 애썼다.
조지 오웰의 『Animal Farm』을 2주 안에 읽고 과제를 제출해야 했지만, 당시 내 영어 실력으로는 처음 몇 페이지에서 막혀 더 읽어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지금처럼 AI가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인터넷조차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낯선 단어와 관용 표현은 끝없이 등장했고, 영한사전에서 찾은 뜻은 문맥과 전혀 맞지 않았다. 영어사전은 기본 의미만 적혀 있어 은유·비유적 표현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2주일은커녕 3개월을 붙잡아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과제는 대충 끄적여 제출하고, 다른 과제들과 합산되어 간신히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정에서 느낀 감정적 상처와 자존감의 붕괴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ESL에서 나는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ENG에서는 순식간에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절망이 지금의 나를 만든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가정을 해보게 된다. AI가 보급된 지금 시대에, 그 나이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영어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