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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디 Jan 27. 2024

애라고 져주지 않을 거야

ep1. 똑같아서 싸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아무래도 어른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한 말이겠으나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느 순간 내 곁에는 어른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민한 어른, 밝은 어른, 어려운 어른은 있어도 어린이는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학을 갔을 때보다 더 긴장했던 점이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존댓말을 써야 할지, 관심사가 많이 달라 자주 하는 리액션이나 장난을 이해하지 않으면 어쩌지 싶기도 했고 우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나이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6~8세의 아이들이었다. 선생님과 단 둘이 수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야무진 아이들이어서인지 그런 걱정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진행되는 편이었다. 수업을 할 때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주다가도 놀이를 하거나 같이 간식을 먹을 때에는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기에도 벅차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낯을 가리든 첫 만남에 와락 안기는 아이든 간에 매일 자랑할 거리가 있었다. 두 번째 만나는 날부터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내가 오면 자랑할 거리들을 모아놓고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의 시간도 언제나 평화로울 수는 없나 보다. 고난도 함께 겪어야 행복이 뭔지 알게 된다는 말처럼 많은 부분을 나눌수록 갈등도 생긴다. 초반에는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삐그덕거리는 이유였다.(물론 지금도 완벽히 맞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이 서툰 아이는 처음에는 수업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하다가 이것도 통하지 않을 때에는 칭얼대다가 울어버렸다. 어른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울음이 당황스럽겠지만 아이는 참을 대로 참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세상 모든 것이 재미있어 놀기만 해도 세상 공부인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지 않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선생님이 편해져서인지 이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기도 한다. 어른에게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 이전에 일방적으로 화를 받아내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지 않은데도 큰 소리가 나면 놀라기 마련이다. 그리고 강한 감정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웬만한 상황에는 동요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니 무기력해질 정도였다. 전혀 화가 나지 않았는데(나는 화가 날 이유가 없으니까) 우선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어떤 말로도 소용이 없고 무지막지하게 화를 낸다. 자리를 뜰 수도 없고 무조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흘러가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도가 지나치다면 내가 일어나 잠깐 자리를 떠서 공간이 분리되면 나도, 아이도 진정하기 쉬웠다. 말로 다 표현하기 벅찬 감정을 눈물과 고함, 화로 표출하는 것이므로 수신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저절로 소멸된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스스로 잘못을 안다. 특히나 자기주장이 분명한 똑똑한 아이는 더 잘 안다. '너는 잘못한 거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쭈뼛쭈뼛 다가올 때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는 나쁜 일을 뒤돌아서면 잊는 편이라 그런지 이때쯤 되면 푸흐흐 웃음이 난다. 그래도 절대로 웃으면 안 된다. 아이가 스스로 사과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고 사과를 받은 뒤 용서해 준다. 그러고 나면 화해의 포옹. 선생님과 아이는 사랑과 우정 사이 그 어디쯤을 닮았다. 그래도 사랑스러우니까.


이건 절대 져주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내가 용서해 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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