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

by 윤슬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없다. 그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만 있었을 뿐.

어릴 적부터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멋진 옷을 입고 주어진 일 이상을 척척 처리하는 전문적인 직업인이 되는 나를 상상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으며 이따금씩 눈앞에 주어지는 성과를 볼 때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조금씩 다른 게 보였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나이에 맞지 않는(나잇값을 못하는) 행위를 마주할 때면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이기적인 태도를 세상에 만연하게 드러내는 어른들을 보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나이 들면,, 내가 어른이 되면...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 사회에 영향을 주는 성격과 태도에 대해서는 '어른'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며 미루어 오던 것들이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어른'의 틀에도 부합하는 사람이 될 나이였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늘 꿈이었던 나는, 한 번도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잘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내가 궁극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은 어디인지만이 관심사였다.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고, 나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을 쌓는 과정이 곧 인생이라 여겼다. 그러나 "너는 항상 주변이 너한테 미치는 영향만 생각하잖아"라는 친구의 한마디가 조용히 흘러가던 물살을 가로막는 돌덩이가 되었다. 아마도 더 좋은 방향으로 물이 흘러가도록 길을 바꿔주기 위한 돌맹이겠지.


처음 그 말을 접하고는 오랜 시간 낙담했다. 내가 그토록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인생을 계속해서 되짚었고, 단단하다고 자부했던 자아정체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멋진 사람이 되고자 다져진 나의 길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허탈함이 나를 번데기처럼 감싸고 오랜 기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들고서야 나는 번데기를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전히 날 수 있는 나비는 아니지만, 요상한 나비 마냥 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지만. 이제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아니라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오로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분투를 하고 있으며, 그들을 존중해야 하고, 나는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과 관계를 맺어갈지를 입체적으로 고민할 때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아주 단순하게 해답을 생각해 냈다. 이것은 아직 귀납적으로 증명이 안된 가설에 불과하지만, 나는 '바다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원래 어디 가든 내 이야기를 어디든 많이 하는 성향을 가졌는데, 이번만큼은 섣불리 이 다짐을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못했다. 그저 다짐으로만 비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위한 다짐임을 알기 때문일까.



작성시점: 202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