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의 서재

봄밤 - 권여선

by 달콤해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것

“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변화하길 기대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크피기스 감독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세라의 마지막 독백이다. 알콜중독으로 삶을 망쳐버린 벤은 라스베가스에서 생을 마감하려 한다. 포주의 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밤거리의 여자 세라는 벤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위태로운 사랑을 이어간다. 그리고 벤은 결국 죽고 세라는 남아 독백을 한다. 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고..세라의 담담한 독백이 단편소설 <봄밤>의 처연함과 닮아있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창비, 2016) 중 단편소설인 <봄밤>에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 권여선은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표작으로는 「약콩이 끓는동안」 「사랑을 믿다」 「레가토」 등이 있다. 등단작품인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수상했고, 오영수 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봄밤의 여자 주인공 영경은 전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이혼한 알콜중독자이다. 쇠를 만지는 일을 하던 수환은 위장결혼을 한 부인이 재산을 다 갖고 도망쳐 신용불량자가 되고 류마티즘까지 앓고 있다. 둘은 마흔즈음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나 사랑을 느끼고 함께 살게된다. 그러는 중 수환은 류마티즘을 제때 치료를 하지못해 병세가 심각해져 손쓸 수 없는 상태로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같은 병원에 영경도 알콜중독으로 입원하게 되며 그들의 사랑은 위태롭지만 애틋하게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사랑은 너로 인해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좋은 사람이 어떤사람인지 평가하는 부분이 그려진다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50쪽) 수환은 자신의 값은 병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점점 0에 수렴되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힘없이 사그러져 가는 그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무엇일까.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세라가 알콜중독자 벤에게 술병을 선물해주는 것과 같이 <봄밤>에서 수환은 영경에게 돌아올 기약 없는 자유를 선물한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진통제를 맞아가면서까지 그녀를 배웅한다. 그것은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 자유를 준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아무런 조건없이, 티 없이 보듬어 주는 이들의 사랑은 조건 투성이인 우리의 사랑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해 봤던가...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인정받아 봤는가...’ 하고 말이다. 사랑은 그럼에도 계속 된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과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소설은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을 둘 곳 없어 떠도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