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 김훈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그 사이의 결핍
‘삶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다. 그리고 죽음이 있어 생명은 생명답게 존재한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이 끊임없는 질문에 작가들은 자신의 문학작품으로 답한다. 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2016) 중 단편소설 「화장」 의 작가 김훈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삶은 곧 기갈(飢渴)인 것인데, 그 배고픔의 목마름이 돌이킬 수 없는 생로병사의 길이라 하더라도 문학은 저 불가능들의 편이 아니라 기갈의 편이라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들도 그 기갈에 편에 서는 글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 김훈은 1948년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여러 신문사의 기자 생활을 거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다. 그는 그의 대표작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한국예술평론가 협의회에서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뽑히기도 했다.
작품은 화장품 회사 간부인 ‘나’의 아내가 2년간 뇌종양 투병 끝에 사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는 아픈 아내를 간호하면서도 추은주라는 회사의 신입 여사원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참담했던 아내의 투병 생활의 회상과 젊은 추은주의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대비시키며 소설은 전개된다. 작가는 주인공들에 대한 어떤 직접적인 묘사 없이 오직 행동과 그에 따른 사고의 변화 과정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방법을 통해 독자들은 독자 나름의 시선으로 주인공들의 성격을 짐작 할 수 있으며 작가의 유려한 필체에 감탄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육신이라는 한계에 갇혀있다. ‘나’의 아내는 뇌종양이라는 병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고통받는다. 그리고 주인공인 ‘나’도 전립선염으로 인한 배뇨 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다. “종양의 발생과 팽창은 생명현상이다. 생명 안에는 생명을 부정하는 신생물이 발생하고 서식하면서 영역을 넓혀나간다. 이 현상은 생명현상의 일부인 것이다. 종양과 생명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치료는 어렵다.”(38쪽) “죽은 아내의 시신이 침대에 실려 나갈 때도 나는 방광의 무게에 짓눌려 침대 뒤를 따라가지 못했다.”(35쪽) 생명이라는 육신이 있는 이상 우리는 질병이라는 고통과 죽음이라는 삶의 무거움을 늘 안고 있는 것이다.
삶이 소멸되는 과정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과 상실은 너무나도 개별적인 것이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46쪽) “생명현상은 그 개별적 생명체 내부의 현상이다. 생명은 뒤섞이지 않는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건너갈 수 없고, 이 건너갈 수 없음이 생명현상이다.”(46쪽) ‘나’는 아내의 생명이 소멸 되어감을 가까이에서 보고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죽음의 무거움 앞에서 그는 더욱 처절하게 살아있음, 생명력을 애타게 갈구한다.
죽음의 무거움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더욱 가벼운 생명력을 동경하게 된다.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이나 허기일 것입니다. 아니면 눈보라나 저녁놀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말의 환영일 테지요.”(54쪽) ‘그’가 추은주에게 가지는 마음은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가지는 생명력에 대한 동경, 결핍에 가깝다. 죽음과 사랑,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 ‘그’는 존재한다. 삶과 죽음 사이, 그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무엇인가를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어체로 표현되는 그의 절박한 고백은 생명에 대한 연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