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꼬집”이라는 말만 들어도 벌써 힘듦이 느껴지지 않나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고집’을 장착하고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평소엔 다 받아주다가도, 갑자기 마음을 닫아버리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 있죠. 달래 보여줘도, 다른 걸로 시선을 돌려도, 혼을 내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역시 똥꼬집입니다.
결국 나도 지쳐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도 가만히 나를 바라봅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살피듯, 묘한 밀당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때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 아이의 고집에도 ‘패턴’이 있다는 걸.
“고집아, 힘들어?”
“응… 힘들어요. 쉬고 싶어요.”
내 입장에서는 ‘수업 시간엔 공부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아이가 단지 고집불통처럼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조금 달리 바라보니, 아이는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예요.
“힘들면 이렇게 말해 보자. ‘선생님, 저 힘들어요.’”
“네, 선생님. 저 힘들어요.”
“좋아. 그다음엔 이렇게 말해도 돼. ‘선생님, 저 잠깐 쉬면 안 될까요?’”
“선생님, 저 잠깐 쉬면 안 될까요?”
“그래, 잠깐 쉬어도 돼.”
“네, 감사합니다.”
잠시 뒤—
“다 쉬었지? 이제 공부할까?”
“네…” (아직 표정은 무겁다.)
“그럼 1분만 더 쉬어 보자.”
“네.”
단 1분 뒤, 아이의 얼굴은 다시 환해졌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마음을 읽어주었더라면, 실랑이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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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와 아들 사이에도 작은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말다툼 끝에 아들이 툭 내뱉었죠.
“아빠, 내가 잘못한 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잖아.
이건 다 누나 때문이야. 아빠는 원래 화도 안 내셨는데, 누나가 호주 가고 나서부터는 나한테만 너무 집착해. 너무 집요해 보여.”
벌에 쏘인 듯 순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아, 내가 아들에게 똥꼬집처럼 보일 수도 있구나.’
미안한 마음을 애써 밀쳐 두고,
‘역시 나는 화도 잘 안 내는 훌륭한 아빠지.’ㅋㅋㅋ
다시 순간의 망상에서 돌아와
곧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다시 불러 침대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아빠가 요즘 좀 힘들어. 몸도 아프고, 그래서 가끔 달라질 때가 있는 것 같아. 그럴 땐 아빠가 아프구나 하고 생각해 줘. 미안하다.”
아들은 뜻밖에도 단순하고 담백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시다면 편히 쉬십시오. 제가 다 하겠습니다. 문 닫아드릴까요?”
순간 남아 있던 감정의 찌꺼기까지 깨끗이 씻겨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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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똥꼬집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내 모습 역시 똥꼬집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솔직함은 서로를 편하게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일찍 읽어주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풀리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