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잘' 이루어 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다.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발목이 잡혀 있다면, 이 문장이 뿌리치고 시작하는 용기가 되어주길 바란다.
서른을 기점으로 고민이 참 많아졌다.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고민을 하다 보니, 가끔은 고민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원래부터 걱정이 많은 편이라 여기에 수많은 고민거리가 더해지면 감당하기 어려워 당혹감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가장 편하게 택하는 대처법은 나를 멍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끌리지 않아도 강제적으로 시청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외로움과 적적한 공기를 TV의 소음으로 채웠던 내게, 그 방법은 가장 단시간에 불편한 감정을 '피하게' 도와주는 최고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참 한결같이 나의 감정을 '해결'해주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고 마는 좋지 않은 대처법이기도 하다.
고민으로 끙끙 앓던 내 몸은 그대로지만, 단 몇 초만에 화면 속으로 도망가는 그 느낌은 너무 달콤하다. 오디오가 비지 않게 나를 대신해서 계속해서 떠들어주는 TV 속 사람들과 내가 체감하는 현실의 색보다 다채로운 배경들은 정말 말 그대로 혼을 쏙 빼놓는다. 그러나 몇 시간의 멍한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내게 와닿는 공기는 이전보다 몇 배로 어색해져 있다. 마치 내가 느끼는 현실과 진짜 현실이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방금 저 영상 안에 있었는데? 아, 이게 현실이지. 나는 원래부터 여기에 있었지' 이 놀랍도록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현실 사이의 공간에 바람이 빠지고 진짜 현실을 깨닫게 되면 나는 공허함과 우울감을 마주한다. 결국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애써 진짜 현실에 적응해보려 시계를 바라보지만 이미 한참을 앞서간 시간은 결코 내 몫인 나의 고민을 가져가 주지 않았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 수많은 고민거리를 피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고민들을 한데 모아 꽁꽁 묶고 새로운 고민을 그 위에 붙였다. '어른이 된 내가 택할 수 있는 생산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의 문장은 묶여있는 고민들을 꺼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정답과 같다. 요즘 스스로를 길들이고 있는 가장 좋은 대처법은 '일단 시작하는 것' 그리고 '일단 조금이라도 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기에 생각의 전환 또는 시간의 흐름만으로 그 고민거리들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또한 이미 수차례 시도해보았으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고, 언제까지 그걸 다 이고 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 시발점은 내가 더 멋지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있었다. 나도 분명 잘하는 것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 잘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끝도 없이 가지를 뻗어나간 것이다. 나의 이상은 완벽함이나 그 정도로 해낼 수 없는 현실의 괴리감은 시도조차 막았고, 수많은 고민들은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될 뿐 결국 같은 의미를 내포한 채 쌓여만 갔다. 괜히 뜬구름을 잡는 건 아닌지, 나는 대단하지 않은 사람인데 굳이 해야 하는지, 할 수는 있는 건지 등등 따라오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뭐라도 이루어내고 싶은 나는 협의점을 찾아야 했고, 그 결과는 '일단 시작하는 것,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는 말은 그 시간 동안 다음에 올 기회를 잡기 위해 조금이라도 행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살다 보면 운이 작용하는 힘도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찾아오는 시기는 모두에게 다르므로 운에 모든 것을 거는 모험은 위험성이 크다.
한 번에 잘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인생은 기쁨을 느낄 땐 크게 느껴보라고 중간에 어려움의 설정값을 둔다. 계단을 올라가기, 장애물을 넘기, 직진이 아닌 돌아서 가기 등등. 하지만 무엇이 됐든 나의 이상이 그 끝에 있다면 나는 일단 시작해야 한다. 움직이며 길을 찾아보고 이지 가지 시도도 해봐야 한다. 완벽함을 기대하며 미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해보며 완성해 나가야 한다. 방치한 고민거리들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마주한다면, 나는 그 허탈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