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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피리 Oct 14. 2021

사람, 그 자체가 세상

살다 보면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 선들의 역할은 한계, 보통, 정답, 으레 그래야만 하는 일 등 오늘의 문장 속 '요만큼'을 정의하는 것이다. 매일 보는 모바일 속 흩뿌려진 생각들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로 이들은 제각각 높아져 벽이 되곤 하는데, 이런저런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앞에서 되돌아가는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이어진 벽들은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버린다. 요컨대 '요만큼'의 세상. 그곳에 우리를 가둔다.


'요만큼'의 세상에 갇혀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딱 그 크기에 맞춘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위한 작은 도전이 점점 어려워지고 남들과 똑같아지려 애쓰는 것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 짓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문제는 이들 중 대부분이 의도치 않게 시끄러운 세상을 살다 보니 갇혀버렸다는 것인데,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곳에서 나오는 방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의 문장은 갇힌 세상에서 방향을 틀 수 있는 이정표와 같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그 세상은 전부가 아니라고 부드럽게 알려주며 등을 살짝 밀어주는 듯하다. 방향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세상은 스스로가 정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될 것이다. 혹여나 오래 걸리더라도 그저 가는 동안 자신이 '요만큼'의 세상에 갇혀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끝까지 인지한다면, 마침내 우리는 작은 세상 밖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줄 이곳의 신조는 다음과 같다.


사람, 그 자체가 하나의 세상이며, 생각하는 만큼 그 세상을 넓힐 수 있다




오늘의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내 나름대로 세상을 넓히기 위해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나 살펴보았다. 책을 읽으며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을 접하는 것, 신앙을 갖는 것, 그리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려 노력하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방법이 맞는 건지,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의 세상이 넓어지고는 있기는 한 건지 등의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세상을 뚜렷하게 정의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력을 하긴 했지만 '으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명확한 정의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부분, '세상'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사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정의에 뒤이어 따라온 문장은 ‘사람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기간,   자체’ 그리고 ‘스스로가 마음대로 활동할  있는 시간이나 공간’이었다. 나는 후자의 두 문장을 통해 세상은 지금 내가 두 발로 딛고 있는 사회인 동시에 '사람 그 자체'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마주한 선들은 모래알같이 작은 세상들이 본인만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정의하여 그어놓은 선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세상의 크기를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세상에서의 정답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남들이 으레 걸어가는 그 길이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다. 도덕, 양심 등 당연히 지켜야 하는 부분과 그저 다른 것을 현명하게 구분하면서, 다양한 사람들 즉 각각의 세상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 이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나 스스로에게도 그 다양함을 허락하고 발전하는 것. 이것이 꽤 오랜 고찰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이었다.




몇 달 전부터 한부모가정의 어린 소녀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나의 후원금은 아이의 꿈인 음악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학원비에 쓰인다. 아동 후원의 첫 시작으로 이 아이와 인연이 맺어진 데에는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자라 마음이 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배움'을 지원하며 하나의 세상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는 아픈 엄마와 어린 동생 사이에서 점점 성장할수록 책임감이라는 것의 무게를 느끼고 바라는 것을 하나둘씩 포기하게 될 텐데,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 이 것만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길 바랐다. 배우면서 생각과 감정의 전환을 시킬 수 있을뿐더러 배움의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기질을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아이를 위해 한마디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오늘의 문장을 선택하려 한다. 사람들이 '요만큼'의 세상 속에서 쉽게 내뱉을 편견의 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툴툴 털어내고 스스로 정의한 세상에서 꾸준히 본인의 길을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스스로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본인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뒤늦게라도 이 사실을 깨닫고  '요만큼'의 세상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나에게,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는 듯 선물처럼 찾아와 준 작은 소녀에게 고맙다.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또 한 번 만들어준 '지파운데이션'에 고마운 마음을 남겨본다.




미래가 불투명한 요즘 같은 시기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고민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듯하다. 끝없이 스스로의 마음을 점검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런 시기에는 더욱이 오늘의 문장에 기대어 보는 게 어떨까. 의미 있게 와닿는다면 '요만큼'의 세상 밖에서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방법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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