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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Jan 13. 2024

비워내기

진정한 가치 찾기

가볍게 입고 외출을 하려고 트레이닝 바지를 찾았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질 않았다.

드레스 룸과 옷장 서랍, 옷걸이 등 바지 가 있을만한 곳을 다 찾아봐도 눈에 띄질 않는다.

겨울이라고 귀찮아서 정리하기를 미뤄뒀던 드레스룸을 둘러보니 옷으로 꽉 차인 방이 어수선해 보였다.

선반도 모자라 바닥 한 면까지 즐비한 옷들이 주인 잘못 만나 몇 년 동안 제 역할 한번 해보지 못한 채 두서없이 개켜져 있었다.

근데 정작 찾는 옷은 어디에 끼어있는지 보이질 않으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두계절동안 구입하는 두께도 다양한 니트들이 이곳저곳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니 '참 비슷한 옷을 많이도 샀구나' 한심한 마음도 들었다.

아우터 하나를 사면 그 옷에 어울리는 바지와 티셔츠를 샀고 그러고 나면 그 옷차림에 어울릴만한 신발까지 맞추어야 패션이 완성된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특히 칼라풀한 배색패턴을 선호하는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켤레씩 사모은 양말 덕분에 가끔씩 열어보는 건넌방 서랍장에는 라벨도 떼지 않은 양말이 알록달록 엉켜있기도 했다.




그렇게 사들인 것들이 비단 옷뿐이겠는가. 

집들이 선물로 받은 오렌지 컬러톤의 식탁과 색상을 맞추기 위해 진브라운색  의자를 새로 구입하고 브라운색 소파에 맞는 에스닉 카펫을 사서 깔고 또 그 물건들에 어울릴만한 장식장들로 구색을 맞춘다.

그렇게 집안의 톤(tone)을 맞추기 위해 사들인 이런저런 것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공간을 넓게 쓰고자 했던 애초의 작심은 허물어져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는 친구에게서 멋진 가운을 선물 받고 서재에 걸어두었는데 그 가운과 자신의 낡고 초라한 물건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서재의 물건들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지 않던 소비를 하게 되었고 예전의 낡은 가운은 자신이 주인이었던 반면 새 가운은 자신을 지배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물건을 구매한 후 그 물건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연속적으로 소비하는 심리를  '디드로 효과'라고 부른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가진 물건의 조화로움과 과시의 만족이 나에게 이 물건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빨강머리 앤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내가 휴대폰 케이스나 컵 받침을 마련하고 또 다른 굿즈가 출시되었는지 가끔 들여다보며 다음 쇼핑거리를 물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실제로 컵 받침은 무거워서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식탁 한쪽 구석에 방치된 지 오래고 휴대폰 케이스 또한 휴대폰이 바뀌면서 어디론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말았다.

수많은 캐릭터 상품들이 나 같은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교묘하게 건드리기 위해 밤낮없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를 여행하다가 그 지역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에 갔었다.

1,2층으로 나뉜 그곳은 과히 세계에서 가장 큰 로스팅 매장이라 생각될 만큼 거대한 공장 같았다.

수많은 굿즈 들이 고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 이쁜 디자인들에 현혹되어 생각지도 않았던 굿즈 몇 개를 손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두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된다는 마음으로 스타벅스 캠핑의자 와 타월을 받기 위해 그보다 더 큰 금액의 프리퀀시를 모았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여럿 보았다.

물건에도 나만의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상품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위만 보더라도 진한 브라운 색의 책상에 어울릴만한 하얀색 철제 연필꽂이를 구매하고 거기에 맞는 빨간색, 노란색, 월넛 색상의 가로 1센티 정도의 납작하고 길쭉한 연필을 꽂아두었다.

언젠가 여수의 NKAMuseum 이란 곳에 들렀다가 단지 이쁘다는 이유로 연필을 샀고 지금까지 깎이지도 않은 저 연필은 이제야 구색 맞추기 용도로나마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쉽게 구입한 물건들에 애착을 느끼고 정을 들이기도 전에 이미 시장은 더 멋지고 그럴듯한 상품들로 소비자의 마음을 한층 더 현란하게 충동질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충동질에 휘말려 들고 싶지 않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손때를 묻히면서 나와 함께한 물건들에 조금 더 곱고 미운 정을 들이기로 했다.

사람도 고운 정 미운 정이 함께 들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보푸라기가 일어나서 볼품없어진 지 오래된 만큼 편안해진탓에 몇 년 동안을 버릴까 말까 망설이면서 함께해 온 옷처럼 내가 가진 물건들도 이 집에서 편안해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운 색 가죽이 벗겨진 채 네이플스 옐로 색상으로 변해가는 소파를 보며 그동안 편안히 몸을 기대고 누이고 했던 소파가 본연의 도리를 충실히 했던 것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너도 나름  이 집의 한 일원이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구나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말이다.




버리고 나눌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 조금씩 비워내기로 마음먹어본다. 

어느 날 인터넷을 뒤지다가 어느 쇼핑몰을 지나다가 문득 눈길이 가고 그중에 몇 번쯤은 굳게 먹은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릴 때도 분명 오겠지만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하여 가던길을 곧게 갈 것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이 가졌으니 더 이상 소중한 가치가 없는 것에 딱히 욕심을 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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