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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Jan 20. 2024

밥 좀 많이 주세요

쌀 한 톨의 힘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풍성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에는 하루 밥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일이 우리 일과 중 빠져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일이었다.

손님 맞을 일이 생기거나 타지에 나가있던 자식이 돌아오는 날에는 장독에 남아있는 쌀을 확인하고 부족한 경우 옆집에 빌리러 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쌀독에 가득 채울 쌀만 있어도 한해 먹을 걱정은 없다고 말하던 때이다.

그러니 해마다 벼농사 준비를 시작하는 봄이 오면 집집마다 모내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 분주해진다.

그렇게 5월의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판에 싹을 틔우고 논으로 옮겨서 키우기 시작한다.

시골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내기 철이 돌아오면 동네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를 하곤 했다.

빨간색 큰 고무대야에 점심을 준비해 머리에 얹은 엄마를 따라 어린 나도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좁은 논두렁길을 위태롭게 걸었다.

논의 양쪽 끝에서 두 사람이 줄을 잡고 최대한 평행을 유지하면 모를 심는 사람들은 그 줄에 맞춰 모를 심었다.

가끔씩 줄이 삐뚤어졌다던 아빠의 호통소리도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줄이 끝나면 또다시 앞으로 전진하기를 반복하며 몇백 번 허리를 굽혔다 폈다 모심는 자리를 옮겨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휑하게 넓어 민둥민둥하던 논은 어느새 빼곡하게 가득 찬 어린 모들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들의 손으로 심어진 모의 줄은 자연스러운 삐뚤어짐의 패턴을 띄고 있지만 허리를 숙이고 모를 심는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옷차림과 맑은 하늘색이 논의 물 위에 덧 입혀지고 거기에 어린 모의 싱그런 녹색까지 더해지니 그 삐뚤어짐마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것뿐인가. 

정성스레 모를 심는 사람들의 숭고함마저 생각한다면 그 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네이버 사진


그렇게 쨍한 햇빛에 잘 익어가던 벼는 장마에 태풍에 여러 번 시련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추수할 시기를 맞고 또다시 사람들은 낫을 들고 다 자란 벼들을 베어낸 후 짝을 이뤄 논에 세워둔 채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쉽지 않은 풍파를 거친 벼들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탈곡기란 기계에서 털어지고 남은 볏짚은 단을 만들어 집 마당 한편에 높게 쌓인 채 겨우내 아궁이를 지피는 불 쏘시개로 야금야금 이용되었다.

이 일은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반복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농사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식생활 습관의 변화를 계기로 쌀 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건강한 정신과 몸을 만들기 위해서 남녀 할 것 없이 근력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로 인한 탄수화물 섭취를 현저하게 줄이고 또한 서구식 식습관으로 인해 육류나 빵 섭취가 늘다 보니 그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밥맛이 없다고 라면이나 빵 커피 등 대충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외식이란 식사패턴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요즘 쌀이란 그저 농민들이 있으니 당연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쌀 정부수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턱없이 감축됨에 따라 일부 지자체에서는 쌀 가격 불안정과 농가 불안심리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수매보전 지원금으로 대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런 대책이 일시적인 수급안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무턱대고 수매를 할 수 없는 탓에 벼농사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많은 젊은이들이 귀농을 계획하고 있지만 벼농사 대신 다른 대체 작물들에 눈을 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마다 벼농사를 했던 아버님도 작년에는 논에 콩을 심으셨다.

쌀보다 수매방법도 수월하지만 벼농사보다 이율이 더 많이 남는다고 하셨다.

한국사람도 이제는 밥심대신 빵심, 라면심, 고기심으로 사는 날이 온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길게 밥에 대해 얘기한 이유는 오늘 조금 우스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고 나를 포함한 우리 몇 명은 철판 비빔밥을 시켰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시간이 지나고 시각을 자극하는 그럴듯한 비빔밥이 나왔다.

그런데 제법 가격이 나갔던 메뉴인 것에 비해 양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요즘 식재료값도 많이 오르고 했으니 그러려니 하고 밥을 비비려 하는데 웬걸 부재료만 가득한 비빔밥에 밥알 이 정말 셀 수 있을 정도로 소량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밥을 이렇게나 적게 주니 우리는 기분이 조금 상했고 몇 번을 참을까 하다가 "사장님 비빔밥에 밥이 너무 적어요".

사장님은 우리말이 끝나자마자 밥 한 공기를 따로 가져와서는 우리 자리에 놓아주셨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께서 " 죄송합니다. 오늘 주방에서 실수가 있어서 밥을 조금밖에 안 넣었다고 하네요" 사과하셨다.


지금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밥때를 기다리고 행여나 끼니를 거르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힘들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 밥이란  우리 집에 마실 온 사람도 내가 마실 가는 이웃집에서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였지만 쌀 한 톨로 나누는 정만큼은  결코 흔하지 않고 가볍지 않은 무게였던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정을 나누는 것이 음식의 다양성만큼이나 변화되어 가지만 무엇을 먹는다는 행위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도 밥을 함께 먹으며 쌓아가는 인간관계에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끼니를 챙길 때 '밥 먹었냐'라고 묻지 '빵 먹었냐' '라면 먹었냐' '고기 먹었냐'로 묻지는 않는다.

모든 물가가 치솟는 시대지만 아직 밥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잖이 있으니 적어도 밥 에서만큼은 너무 야박하게 굴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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