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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Feb 03. 2024

너와 나의 흔들의자

seam meets the heart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남편이 후다닥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가스불에 뭔가 올려놓고 깜빡하고 있었던 거다. 

데자뷔처럼 요즘 들어 자주 보는 장면이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도 이제 다 됐네' 하면서 살짝 나사 빠진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한다.

"자기 나이도 벌써 오십인데... 그럴 때 됐지 뭐... 당연한 거야. "


사실 나는, 저렇게 허술해 보이는 남편의 행동들이나 가끔 하는 시답잖은 얘기들에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저게 무슨 행복까지 한 일일까 싶겠지만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 완벽주의 성향에 가까운 남편의 성격으로 인해 우리 둘 다 결혼초에 마음고생을 꽤나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이 이해가 안 되었고 '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저러지? 참 성격 이상해' 하며 속으로 비난한 적도 많았다.


아버님 농사일을 도와주러 남편과 내가 거의 주말마다  시골집에 다닐 때였는데 그때 아버님과 함께 일하는 남편을 보며 조금은 남편의 성격을 이해하게 되었다.

퇴직을 하신 아버님께서 고향으로 내려가 농장을 일구었고 그 모든 일을 남편과 함께 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달라 기분이 상하고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했다.

매사에 원리원칙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인 아버님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남편이 함께 만났으니 작은 일에도 부딪히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자신의 의견은 전혀 내세우지 않은 채 그저 아버님 앞에서 묵묵히 시키는 대로 일만 할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당신의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면  남편에게 큰소리를 내는 아버님 앞에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나는 일상에서의 모습과 일할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른 아버님을 보면서 조금 놀랐었다.

결혼 전 남편은 어느 날 아버님과 같이 일하다 기분이 상해 버스도 택시도 거의 다니지 않는 시골길을 걸어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다분히 까다로우신 아버님 밑에서 자란 남편에게 아버님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교육되었을 거고 점 점 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가는 성향으로 변해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아버님이지만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으신 어머님이 곁에 계셨기에 두 분은 크게 언성 한번 높이지 않으시고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고 계신다.

다행히 차분하시고 다정하신 어머님을 닮은 부분도 많았기에 남편은 '오늘 하루를 맘 편하게 살면 그게 행복이다' 라며 나의 쓸데없이 많은 생각과 걱정을 종종 잊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결혼전이든 결혼 후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알고 있는 말이지만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그 말 또한 최대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에 맞서게 되는 듯하다.


언젠가 남편하고 말다툼을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성격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말해줘, 고쳐볼게." 

"아니, 없어"

남편의 행동이나 말 들에 고쳐줬으면 하는 나의 왼갓 바람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다가 '자 이제 너도 맘에 안 드는 나에 대해 뭐든지 말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건넨말에 남편의 평온한 그 한마디는 내 마음에 잔뜩 부풀어있던 팽팽한 풍선의 바람을 피~익 하고 빼버리고 말았다.

툭하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등 등.... 끊임없이 남편을 귀찮게 해온지라 초고속으로 날아올 강속구에  타격 입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저런 대답을 들으니 어찌 바람이 안 빠지겠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 나에게 맞게 바꾸려다가 싸우는 거야" 하는 거다.

그 상투적인 말이, 누구나 다 인정하지만 이해관계에 부딪혀 다툼의 상황이 오면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인정해라'라는 단어가 남편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만들어 놓은 잣대에 자꾸만 상대방을 재면서 그 사람 성격의 낫고 못하다는 기준을 내가 만들어 가고 있었던 거 아니었을까.

틀리고 맞다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에 내가 원하는 답안을 쓴 사람만이 정답이라고 시험지에 엉뚱한 점수를 매기며  잘못된 채점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서술이나 논술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문제를 이해하고 꼼꼼히 해석하고 요약하여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 또한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맞춰가며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상대방의 진심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답형의 답변으로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오류이다.

그 오류는 잘못된 방향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첫 단추 일수도 있다.


나는 혹여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결국은 나와 맞다 안 맞다 를 정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다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어 버리는 나만의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지금이라고 그런 남편의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덜렁덜렁 한 성격의 나를 만나 살다 보니 우리 두 사람 성격의 만남 장소에 그저 오래되고 편안한 우리 둘만의 흔들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함께 앉아 이쪽으로 저쪽으로 흔들거리다 결국은  중심을 잡아가는 그런 흔들의자 말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흔들의자 하나쯤 마련해 놓았으면 좋겠다.

살짝 건드린 손끝에서마저 이리저리 흔들거리지만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흔들의자처럼 서로서로 부대끼고 상처받아 흔들거려도 결국은 나의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찾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나만의 흔들의자 하나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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