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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Feb 24. 2024

오빠의 퇴직라이프

일을 벌이는 것이 행복

출근길 오빠가 전화를 했다.

내가 얼마 전에 해줬던 골뱅이 소면 무침이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 한번 해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4월 어느 날 생태공원으로 캠핑을 갔을 때였는데 오빠의 집과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그날따라 혼자 집에 있을 오빠가 생각나 그곳으로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연락을 했다.

운전을 해야 해서 좋아하는 술은 마시지 못하는 오빠를 위해 골뱅이 무침을 했다.

캔에 들어있는 골뱅이를 사서 오이, 상추, 당근, 양파, 를 채 썰어 넣고 빠져서는 안 될 진미채 오징어도 한주먹 넣은 후  맛이 보장된 비빔면 소스를 충분히 부어 버무린 다음 접시 가운데를 동그랗게 벌려 마지막으로 삶은 소면을 넣고 맛있는 골뱅이 소면 무침을 완성했다.

이미 한차례 고기를 구워 먹고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오빠는 골뱅이 무침이 맛있다며 혼자서 거의 한 그릇을 해치웠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가족들과 함께 계곡옆에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고 물놀이를 했던 추억이 많은 나는 캠핑이 대세로 뜨기 시작한 몇 년 전 'getting old sucks! '를 외치다가 더 늦기 전에 야생의 삶을 맛보고 싶다고 남편을 구슬렸다.

시골태생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도시생활을 한 나름 도시남인 남편은 어떤 일이든 벌이는 것을 싫어하고 그저 '가만히'를 외치는 사람이었는데 웬일인지 캠핑에 대해서만큼은 어물쩍 내 의견에 따라줬다.(그 후로 나보다 더 캠핑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캠핑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더 잦아졌고 우리 형제들 중에서도 몇몇이 캠핑에 관심을 가지니 캠핑이 대세는 대세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이 캠핑을 즐기는 것을 알게 된 둘째 오빠가 어느 날 전화를 해왔다.

캠핑카를 하나 중고로 사고 싶으니 남편에게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삼십여 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오빠가 언제 시간이 나서 캠핑카를 타고 이곳저곳을 방랑한단 말인가.

그저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캠핑한다고들 하니 충동적으로 잠깐 그러다가 말겠지. 생각하였다.

그래도 부탁은 부탁인지라 나와 남편은 중고시장도 알아보고 주말에는 캠핑카를 만드는 업체에 직접 방문하여 캠핑카에 올라타보며 잠깐동안이나마 기분도 내보고 카탈로그 도 꼼꼼히 들여다보며 관심을 가졌다.

그 후로 한동안 오빠는 연락이 없었고 우리의 생각이 맞았다고 결론 내릴 무렵 오빠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지금 대구에서 캠핑카를 사가지고 집으로 가고 있다." 며 고속도로 어디쯤에선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헉! 일을 저질렀네'

우리에게 소식이 뜸했던 동안에도 오빠는 아들과 함께 충청도에 있는 캠핑카도 보러 가고 나름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왔던 모양이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아직 정년이 2-3년 정도 남았기에 퇴직 후에 천천히 알아봐도 늦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캠핑카 선 구매는 지치고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기 위한 오빠 나름의 볼모였던 것이다. 

오빠는 결국 정년을 두 해 앞두고 퇴직을 하였다.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기에 올케언니 또한 결국은 오빠의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오빠가 퇴직하는 날 나는 눈물이 났다.

20대부터 혼자 자취하며 시작된 오빠의 직장생활이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제 캠핑카 타고 언니랑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면 되겠네."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집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 형제들 중에서도 오빠는 특히나 이일저일 벌이기를 잘하는 편이다.

재미 삼아 지었던 농사는 퇴직 후 점점 종류가 많아지더니 이제는 웬만하면 있을 건 다 있는 농사꾼의 집이 되어갔다.

고구마, 천마, 양파, 감자, 들깨, 콩 등 가짓수도 많으니 종종 얻어다 먹는 나는 싫을 이유가 없긴 했다.

작년부터는 벼농사도 직접 해서 수익을 더 많이 내었다며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런와중에도 틈틈이 경기도로 강원도로 캠핑카를 끌고 무작정 길을 떠나기도 했다.

캠핑카를 사서 언니와 함께 그동안 못 다닌 여행을 다니겠다고 작정했다더니 그 약속을 어느 정도는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오면 오빠의 캠핑카는 잠깐동안 동면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은  어느 날 캠핑카는 벚꽃 만발한 지리산 계곡에서 또 어느 날은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동해바다 어딘가에서 골뱅이 소면 무침을 하며 맛있는 한낮의 단꿈에 젖어드는 오빠 부부와 함께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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